[강대웅의 정문일침(頂門一鍼)] 행정 대집행 적법하다고 인권까지 간과해서야

  • 평택 수용지구내 농작물 철거 과정서 고령 재배자 수치심 유발

  • 고령·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 부재 비난...세심한 행정 필요

  • 시측, 행정대집행 과정은 적법...수차례 철거 요청 이행 안돼

사진독자제공
[사진=독자 제공]
'아무리 행정 대집행이지만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토록 심하게 했어야 했나?' 강제 수용된 평택시 공영차고지 조성 지구 내에서 91세 노파가 경작 중인 텃밭을 불법이라는 이유로 굴삭기를 동원해 밀어버렸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특히 행정 대집행 과정에서 철거에 나선 공무원들과 용역 인력이 노파의 인권을 침해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 비판도 거세다. 사건은 지난달 30일 일어났다.

지난 9월 12일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25조를 근거로 중부공영차고지 조성 부지(약 1500평)에 남아 있는 농작물과 수목을 10월 2일까지 스스로 철거하라는 계고서를 발송한 평택시 공무원 8명과 용역인력 5명 등 13명이 이날 현장에 들이닥쳤다. 그것도 굴삭기까지 앞세우고 나타났다.

근거로 "기한 내 정리가 이뤄지지 않자, 시는 10월 30일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통보한 사실"을 내세웠다. 현장에는 토지 소유자의 노모인 91세 노파가 혼자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시 직원들은 노파를 원형으로 둘러 막고 이동을 차단한 뒤 굴삭기를 들이밀어 경작 중인 고구마·고추·파·서리태콩과 소나무 120주를 한꺼번에 밀어제쳤다.

이 과정에서 해당 노파는 화장실을 가려  했으나 직원들이 계속 따라다녀 결국 소변을 옷에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행정 집행이 노파의 신체 상황과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됐다는 지적이 나오며 시민들도 분개하고 있다. 당시 정황상, 노파가 행정대집행을 몸으로 막으려는 행동으로 비춰졌다고 하더라도 집행에 나선 여성 공무원들의 동행으로 배려했어야 했다.

물론 시청의 대집행에 대한 불법성을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평택시는 "여러 차례 자진 철거를 요청했고, 이행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행정대집행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련의 행정대집행 과정을 보면 적법한 것은 사실이다. 절차도 모두 거쳤고 경고나 계고도 실행했다. 하지만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 어쨌거나 91세 노파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자유행동'을 제약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이를 볼 때 행정대집행 당시 고령·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가 부재했음도 명확하다. 아무리 불법이라 해도 91세 고령자를 상대할 때 행정은 특히 세심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일 때는 더욱 그렇다. 91세 노파는 60년 넘게 농사짓던 땅을 강제 수용당한 당사자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집행에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는 시 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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