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관세협상에 잠정 합의하며 사실상 타결을 선언했지만, 최종 서명까지는 여전히 막판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협상 직후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밝히는 등 한국 정부의 설명과 엇갈리는 부분이 드러나면서, 반도체·철강 등 핵심 품목과 투자 구조를 둘러싼 세부 조율이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9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협상 세부안에 잠정 합의했다. 양국은 한국산 제품의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다.
투자 구조는 현금 2000억 달러와 조선·해양플랜트 등 산업협력 분야 1500억 달러로 구성됐다. 현금 투자는 연 200억 달러 이하, 10년 이상 분할 방식으로 진행되며 원리금 회수 전까지는 수익을 5대5로 배분하고, 이후 수익이 발생하면 9대1로 미국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구조다. 여기에 20년 내 회수 속도가 지연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재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추진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투자처 결정권이 미국 중심으로 설계된 점은 불안 요인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투자위원회가 사업을 주도하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협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협의 구조다. 실질적 결정권이 미국에 있는 만큼, 한국이 직접 리스크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러트닉 장관은 투자 집행 방향에 대해서도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기반시설, 핵심광물, 첨단제조업,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터 분야에 2000억 달러가 투입될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조선업 투자에는 최소 1500억 달러가 배정된다”고 밝혔다. 이 중 조선업 투자는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국이 약속한 연간 2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통화스와프 없이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으로 충당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하다.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나 달러 약세가 현실화될 경우 외환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으며, 운용이익이 부족할 경우 국제금융시장에서 정부보증채를 발행해 충당할 계획이다. 이는 재정·통화정책 양쪽에 모두 새로운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철강 관세 인하가 협상에서 끝내 관철되지 못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현재 50% 수준인 철강 관세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게 됐으며, 반도체의 경우 관세율·적용 시점 등 구체적 조건이 확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관세 타결의 외형은 갖췄지만 실질적 성과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평가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합의에 뚜렷한 독소조항은 없지만, 수익배분 구조나 투자 결정권 등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쥔 만큼 향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품목별 협상과 투자 세부 조정 과정에서 추가적인 요구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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