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칼럼] 'K 방산'과 러시아의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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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방위산업 발전 토론회에서 자주국방을 위한 방위산업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2030년까지 세계 4위를 목표로 방위 및 항공우주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하였다. 스웨덴의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기준 방위 부문 매출이 세계 10위이며, 2012~2016년 기간 중 한국이 수출한 무기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였는데 2017~2021년 기간에는 2.8%로 급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수출액도 177% 증가하였다. 1971년 주한미군 1개 사단 철수를 계기로 육성이 시작된 한국 방위산업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었는데 현재 수준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방위산업 종사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다. 그런데 그것에 더해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990년대 대러시아 경협차관 상환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불곰사업은 한국 방위산업이 가일층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시 한국은 불곰사업을 통해 러시아의 최신 무기와 기술을 얻게 되었는데 1차 시기(1995~1998년)에는 T-80U 전차, BMP-3 장갑차, 대전차 미사일, 이글라 휴대용 대공 미사일 등이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특히 T-80U은 우리 군과 미군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다. T-80U는 자동장전장치와 가스터빈 방식의 파워팩이 특징인데, 자동장전장치는 K2 흑표 전차와 K9 자주포에 적용되었다. 또한 러시아가 T-80U의 철갑탄으로 '감손우라늄 분리 철갑탄'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인계한 덕분에 우리 군은 우라늄탄을 비롯한 전차의 주포 제작 기술을 터득하였다. 2차 시기(2002~2006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메티스-M 대전차 미사일, 무레나 공기부양정(한국명 솔개), IL-103(일류신 고등훈련기), Ka-32A(중대형 다목적 헬기), ANSAT헬기(카잔 경헬기) 등이다.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된 러시아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것으로는 K2 흑표, KF-21 보라매, KM-SAM 천궁, 대전차 미사일 현궁 등이 있다. 그 밖에 러시아가 기술 전수 명목으로 제공한 것에 항공 전자 장치 및 구조 연구를 위한 Su-25 전투기 및 Mi-17 헬리콥터, 공중 방어 미사일 시스템, 로켓 시스템 등이 있으며 더불어 양국 과학자들 사이에는 군사 기술 분야 연구 및 교류가 이루어졌다.
 
또한 한국형 발사체 KSLV-1(나로호) 개발 사업(2004~2013년)이 있다. 당초 한국 정부의 제한된 예산에 대해 협력 의사를 밝힌 나라는 우주 항공 선진국 중에서 러시아가 유일하였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 최초로 로켓 운반체를 제작하여 발사까지 성공하였으며 우리 과학자들이 운반체의 설계 및 엔지니어링 자료에 완전히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조립 및 발사 경험을 쌓았다. 러시아 측은 발사체 1단 엔진 제공뿐만 아니라 액체 로켓 엔진 및 제어 시스템 기술을 이전하였다.
 
‘불곰사업’과 ‘나로호 개발 사업’에 대해 소극적 또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무기를 직접 사용하는 군의 입장에서는 무기 체계가 전혀 다른 러시아제 무기 도입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을 수도 있으나 실제 사용 편의 여부와 러시아 무기 및 기술 도입이 우리의 방위산업에 기여하였느냐는 서로 다른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어느 나라든 최신 무기는 다른 나라로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국가도 많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이 러시아에서 최신 무기와 기술을 받은 것은 이례적인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 방위산업 발전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나로호 사업에 대해서 러시아는 발사체의 1단 엔진을 제공하였을 뿐 기술 이전은 물론 부수적으로 얻은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한국은 로켓 발사체 제작은 물론 발사 경험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로켓 발사체의 설계, 조립, 설치, 발사까지 전 과정에 걸쳐 양국의 과학자들이 함께 작업한 것은 한국 과학자들에게는 특기할 만한 학습의 기회가 되었다.
 
미국은 6·25 전쟁 이후 한국에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수출하였지만 기술의 이전에는 매우 소극적이었으며 미사일 개발과 관련하여서는 기술은 제공하지 않고 사거리 제한을 풀어주었을 뿐이다. 그것도 한국 정부가 오랜 기간 조르고 졸라서 얻은 결과였다. 다음으로 항공우주산업 관련 한국형 로켓 KSLV-1(나로호) 개발 사업에 대해서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에는 그런 사업이 필요없다고 하며 협조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협조하였으며 결국 러시아 로켓 공학의 도움으로 한국형 로켓 KSLV-2(누리호) 개발은 이제 완전히 국내 기술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한국 방위산업이 날개를 달고 국제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이른바 ‘K-방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장하였는데 그러기까지 러시아의 기여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 단지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유럽 안보 위기의 파장이 중동·아시아로 확산되면서 한국산 무기의 수출 시장이 확대된 면도 있다. 루마니아는 K9 자주포를 도입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천궁 미사일을 구매했다. 특히 2025년 폴란드 군의 날 행사에서는 한국산 무기들이 정규부대 주력으로 전면 등장하였다. 어느 해외 매체는 "러시아가 실전에서 한국산 무기 성능을 증명해 주는 셈"이라고 하였다. 한국이 러시아 기술을 활용하여 무기를 개발하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전쟁으로 국제 방산 시장에서 한국산 무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였으니 러시아는 공급에 이어 수요에도 도움(?)을 준 셈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미 30여 전에 공산주의 이념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러시아에 대해 아직까지도 냉전적 사고에서 접근하는 면이 있다. 한반도에서 ‘냉전’은 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존재로 여전히 진행 중이나 러시아는 과거의 소련이 아닌 만큼 협력의 관점에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 방위산업이 오늘에 이르는 데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역할이 있었다는 점이 러시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더해져 러시아의 유용성에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길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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