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 대한 ‘SM엔터 시세조종’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을 단순한 대량매수 행위로 볼 수 없으며, 보다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시세조종을 ‘가격을 인위적으로 고정하거나 안정시키려는 주관적 목적’과 ‘그 목적을 실현하는 거래 행태’가 결합될 때에만 성립한다고 해석했다. 즉, 단순히 주가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쟁사의 공개매수를 방해한 행위만으로는 범죄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시세조종의 구성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정상적인 시장 요인을 제외하고 인위적 조작을 가할 목적을 갖고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매매를 한 경우에만 시세조종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주장한 ‘공개매수 저지 목적’만으로는 자본시장법이 처벌 대상으로 삼는 ‘시장 왜곡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내 대량매수가 공개매수 경쟁의 일환으로 이뤄진 경우, 그것이 시세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형사적 제재의 대상은 아니라는 취지다.
핵심은 ‘목적’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목적을 실현하는 매매의 양태가 인위적 조작으로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주문 내역을 거래 시점·간격·호가 관여율·고가매수 비율·종가관여 여부 등 여러 지표로 분석한 뒤 “제출된 주문이 시세조종성 주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상적 매수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격 변화와 패턴일 뿐, 시장가격을 비정상적으로 고정하려는 의도나 실행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모 여부에 대한 판단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이 제시한 유일한 증거였던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 임원의 진술에 대해 법원은 “중요 부분이 일관되지 않고, 경험칙과 상식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진술 과정에서 수사 압박과 이해관계가 작용했으며, 허위 진술을 할 동기도 충분했다”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전문진술 요건에도 맞지 않아 증거능력 자체가 없다고 했다. 결국 공모의 사실적 기초가 사라지면서 주관적 목적의 존재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시장 상황 역시 검찰 논리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봤다. 2023년 2월 28일, SM엔터테인먼트 주가는 이미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 원)를 넘어 있었고, 시장은 하이브의 공개매수 실패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공개매수의 마감일에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 상황은 아니었다. 피고인들이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1200억 원을 투입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 공개매수 종료 직후 SM 주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재판부는 “당시 매수는 향후 주가 상승을 대비한 물량 확보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했다.
이 판단에는 ‘공개매수 저지’와 ‘시세조종’은 별개의 개념이라는 구분이 깔려 있다. 법원은 “공개매수 과정에서의 장내 매수는 경쟁 수단으로 통상 허용된다”며 “이를 곧바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본다면 공개매수 제도 자체가 기능을 잃게 된다”고 밝혔다. 시세조종 판단에서 ‘시장 영향’과 ‘시장 조작’을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것이다.
대량보유상황 보고의무 위반 부분 역시 같은 논리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카카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공동보유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특별관계자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보고의무 위반은 공모를 전제로 한 범죄로, 공모의 부존재가 입증되면 자동적으로 무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자본시장법 적용의 한계를 분명히 하며, 단순히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과가 아니라 가격을 인위적으로 고정하려는 의사와 그 실행 양태가 입증돼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세웠다. 재판부의 논리도 일관됐다. 시세조종의 구성요건은 ‘의도’와 ‘행위 양태’의 결합으로 한정되고, 그 의도를 입증하려면 객관적 거래 패턴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일 진술에 의존한 공모 입증은 전문법칙과 신빙성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고, 공개매수 국면에서의 방어적 장내매수 역시 통상적인 경쟁 행위로 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항소심에서는 이 구조가 유지될지, 검찰이 시세조종 구성요건을 어떻게 재구성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선고 말미에 “별건 수사로 인한 압박이 피고인 진술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해선 안 된다”며 수사 과정의 공정성에도 경고를 남겼다. 이어 “본건과 무관한 수사방식이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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