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개척단 사건' 60년 만에 국가배상…법원 "국가기관이 주도한 인권침해"

서산개척단 강제결혼식 당시 촬영된 사진 사진SBS 그것이알고싶다 캡처
서산개척단 강제결혼식 당시 촬영된 사진. [사진=SBS 그것이알고싶다 캡처]

1960년대 초 정부가 부랑인 등을 강제로 수용했던 ‘서산개척단 사건’ 피해자와 유족들이 60여년 만에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게 됐다. 법원은 국가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118억원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은 서산개척단 피해자 및 유족 112명을 대리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총 118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상액은 피해자별로 입소 기간과 피해 정도를 고려해 1일당 15만~20만원 수준으로 산정됐고, 일부 사망 사건은 별도의 금액이 추가로 인정됐다.

서산개척단 사건은 1960년대 초 정부가 사회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충남 서산 지역에 개척단을 설립하면서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전국의 부랑인·고아·무의탁자 1천700여명을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해 집단 이송했으며, 이들을 강제 수용해 노동에 동원했다.

보건사회부는 ‘부랑인 정착 사업’ 명목으로 예산과 물자를 지원하며 개척단 운영을 관리·감독했지만, 실제로 단원들은 철저히 감시와 통제 속에 자유를 박탈당했다. 강제노동, 폭행, 부실한 식사와 의료 방치 등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정부가 약속했던 토지 분배도 지켜지지 않았다.

2006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한 뒤, “국가기관이 주도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했다. 위원회는 “당시 경찰과 지방 행정기관이 사회정화 명목으로 무고한 국민을 강제로 수용하고, 폭력과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법률구조공단은 2022년 피해자 및 유족을 대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은 재판 과정에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보고서와 피해자 진술, 의료기록 등을 근거로 “국가가 불법적으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권을 침해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쟁점은 ▲과거사정리위 보고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사건 발생 이후 오랜 기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는지(소멸시효 도과) 여부였다. 피고 측인 국가가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한 반면, 공단은 “국가기관이 은폐하거나 장기간 침묵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은 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맞섰다.

법원은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당시 국가가 사회정화 명목으로 무고한 국민을 강제 수용하고 폭력과 학대를 가한 것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침해한 불법행위”라며 “국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는 공적 절차를 거친 객관적 자료로, 민사소송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증거”라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한 윤성묵·이지영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는 “국가가 사회정화라는 이름 아래 자행한 인권침해를 법원이 명확히 인정한 역사적 판결”이라며 “배상액 규모보다 국가 책임을 법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