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문명은 늘 '소금'과 함께해 왔다. 고대부터 소금은 식품 보존, 염장, 방부, 가공식품 산업, 축산·어업 연계 등에서 핵심 역할을 했고, 소금이 통화의 기능을 하기도 했다. 로마 제국에서 병사 급료로 '솔타(salt)'를 지급했다는 기록은 그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에도 소금은 식품·화학·제약·석유 정제·염색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원료로 사용되며 산업적 파급력이 크다. 소금이 생산되는 갯벌 환경은 연안 생태계의 핵심 축이며, 철새 도래지·저서 생물 서식지로서 생물다양성 유지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 염전 산업은 많은 부침을 겪어왔다. 과거 해안 갯벌을 활용한 염전이 무수히 존재했지만 산업화와 토지 개발 압력, 수입 소금 공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수입산 소금이 들어오면서 국내산 소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고, 정부의 폐전 유도 정책으로 많은 염전들이 소금 생산을 포기했다. 당시 대형 염전들이 골프장이나 레저 시설 등으로 부지를 전환하면서 끝까지 소금 생산을 고집한 태평염전이 국내 최대 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산업의 쇠퇴는 단순한 생산 축소에 그치지 않고, 염전이 지닌 문화적·자연경관적 자산마저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위치한 태평염전은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국내 최대의 단일 염전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 구제와 국내 소금 생산 증대를 위해 조성된 단일 염전으로 알려졌으며, 목조·석조 소금창고와 염부사 공간 등이 남아 있는 등 근대 문화유산적 요소도 있다. 이런 우리나라 근대 염산업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2007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됐다.
태평염전의 문화재 등록은 단순한 유산 보존을 넘어 염전 산업 유지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염전이 운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박물관과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 사회와 관광객들에게 천일염과 이 유산의 가치를 널리 전달하는 등 민간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활용할 수 있는 근대문화유산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천일염 가격의 불안전성으로 인한 산업 전망 불투명, 염전 근로에 대한 여러 논란이 불거지면서 '보전' 의미가 퇴색함에 따라 태평염전 역시 염전 유지보다는 더 사업성이 높은 태양광 발전 전환 등 사업 다각화를 고민하고 있다. 염전 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와 현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게 된 과거 다른 염전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 K-컬처 히트에 이어 K-푸드에 관한 전 세계인의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K-푸드를 떠받치는 김치·된장·고추장 등 발효 식품 근간인 천일염 산업의 유지와 지속 발전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염전은 단순한 전통 산업이 아니라 생태·문화·관광과 결합할 수 있는 국가적 자산이며 발효 식품이라는 특징을 가진 K-푸드 근간이다. 그럼에도 현재는 다른 농업이나 어업과 다르게 중장기 정책이 부재하고, 일부 지자체 단위의 산발적 관리에 머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염전이 지닌 다층적 가치를 지켜내기 어렵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관련 부처도 협력해 포괄적인 염전 산업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생산 기반 유지, 문화유산 보전, 갯벌 생태계 보호, 지역관광 연계까지 담아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태평염전을 비롯한 국내 염전들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K-푸드 근간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
소금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인류 문명을 지탱해 온 기초 자원이다. 한국 염전은 단순한 생산 시설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생태와 지역 정체성이 응축된 자산이다. 지금이야말로 염전을 '보존 대상'을 넘어 '미래 자원'으로 바라볼 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