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반중 정서'에 가려진 중국의 기술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한국 사회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최근 10년간 극도로 왜곡되어 왔다. 사드(THAAD) 배치 갈등, 코로나19 발원지 논란,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 한국의 동맹 선택, 그리고 2023년 이후 중국과 무역수지 적자전환까지 반중 정서는 정치·언론·시민사회를 관통하며 ‘중국 위기론’과 ‘붕괴론’을 일관된 메시지로 반복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중국은 미국과 8년간의 기술 제재와 경제 전쟁을 견뎌내며 오히려 핵심 첨단 산업에서 세계 최정상권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은 중국의 성장을 ‘일시적 현상’ ‘거품’ ‘국가 자본주의의 왜곡’으로 치부하며 무시하고 있다. 이는 위험한 착각이고 실력을 무시하다 보면 실패한다
중국의 기술력은 지금 더 이상 ‘모방’이 아니다. 2023년 화웨이(华为)가 기린(Kirin) 9000S를 내놓은 순간 세계는 중국이 EUV 노광기 없이도 7㎚급 칩을 생산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 칩은 TSMC나 삼성의 공정이 아닌 중국 내 SMIC의 N+2 공정과 칩렛(Chiplet) 기술, 국산 DUV 장비, 고급 패키징(HBI 인터커넥트)의 조합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의 제재를 우회한 ‘기술적 우회 전략’의 결정체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은 단순한 추격자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선도자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언론과 업계는 여전히 '중국은 수율이 낮다' 'EUV가 없다'는 식의 표면적 분석에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수율이 아니라 시스템 통합 능력이다. 중국은 ‘전체 생태계’를 움직이며 기술 자립을 실현하고 있다. 화웨이가 이끄는 반도체 생태계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 민간 스타트업을 아우르는 ‘항공모함’이다. 이는 한국이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와 통제력을 가진 전략적 거점이다.

우리는 과연 중국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중국의 위상은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미 중국은 세계 주요 산업에서 압도적 점유율과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
전기차(EV)에서 중국은 세계 전기차 시장의 60%를 차지하며 BYD는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판매 기업이 되었다. 2024년 기준 중국산 전기차는 유럽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했고 배터리에서부터 모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국산화 체계를 구축했다. 배터리에서 CATL은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의 37%를 점유하며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시장 지배력을 갖췄다. 최근에는 솔리드 스테이트 배터리에서도 특허 건수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태양광에서 중국은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며 다결정 실리콘, 웨이퍼, 셀, 모듈 전 주기에 걸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LONGI는 단결정 실리콘 기술에서 세계 최고 효율을 기록하며 기술 리더십을 입증했다.
드론에서 DJI는 글로벌 상업용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 국방부조차 DJI 드론을 금지하지 못할 정도로 기술 격차가 크다. 철도 및 인프라에서 중국은 고속철도 운행 거리 4만㎞를 돌파했고 ‘푸싱호(复兴号)’로 세계 최고 속도(시속 350㎞)를 상용화했으며 동남아, 중동, 유럽에 고속철 수출을 추진 중이다. AI 응용 및 스마트 제조에서 중국은 AI 기초 기술보다 AI의 산업 적용(AI+제조, AI+물류, AI+농업)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는 제조 공정 최적화, 품질 검사, 물류 자동화에 AI를 적극 도입하며 ‘다크 팩토리(Dark Factory)'를 실현하고 있다. 로봇 산업에서 중국은 산업용 로봇 설치 대수에서 세계 1위이며, 보쉬(Bosch) 중국 법인은 이미 90% 이상의 공정을 자동화한 ‘불 꺼진 공장’을 운영 중이다.
디지털 결제 및 핀테크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10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며 현금 없는 사회를 완성했다. 이는 글로벌 핀테크의 표준이 되고 있다. 위성 및 우주기술을 보면 중국은 2024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상용 위성을 발사했으며 자체 구축한 ‘베이두’ 위성항법시스템은 GPS와 경쟁 수준에 도달했다. 신소재애서 그래핀, 탄소 나노튜브, 고성능 세라믹 등 첨단 소재 분야에서 중국은 특허 출원 건수와 상용화 속도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단순한 규모의 우위를 넘어 기술 표준화, 생태계 확장, 글로벌 공급망 장악이라는 전략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제 ‘시장’이 아니라 ‘규칙’을 만드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다크 팩토리’ ‘네이쥐안(内卷)’의 진화, 한국 제조업의 위기로 온다
한국은 1992년 수교 이후 30년간 대중 무역흑자를 누렸지만 그 실상은 중국 내 한국 자회사의 부품 수출에 의한 ‘환상의 흑자’였다. 이제 중국이 반도체, OLED, 배터리 화학소재등 핵심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면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 내 생산을 축소하고 있으며 이는 곧 한국의 무역흑자 기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위협은 제조 방식의 근본적 전환에 있다. 한국은 지금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냐 마냐 논의하는 사이 중국은 이미 AI 기반 ‘다크 팩토리(불 꺼진 공장)' ‘007(0시부터 0시까지, 7일간)' 시스템을 실현하고 있다. AI와 로봇이 24시간 7일간 공정을 운영하는 공장에서 인간은 감독자일 뿐이다. 이는 원가 경쟁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제공하며 트럼프의 30% 관세도 무력화할 수 있다.
중국은 ‘네이쥐안(内卷·내부 과당경쟁)'으로 인한 낭비도 이제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모든 산업에서 경쟁력 없는 중소 기업을 퇴출시키고 CATL, BYD, LONGi 등 거대 기업 중심의 과점 구조를 만들고 있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이 모든 변화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한국이다. 중국의 ‘다크 팩토리’와 과점화된 산업 구조는 인접한 제조 강국 한국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감정적 반중 정서로 중국을 외면하면 우리는 중국의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보지 못한 채 실패할 것이다.
중국을 이기려면 먼저 중국을 ‘알아야’ 한다.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감정적 대응은 실패를 부른다. 일본은 1980년대 한국을 ‘저가 제품 생산국’으로 무시하다가 반도체에서 역전당했다. 한국은 일본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한국, 중국을 ‘싫어하는 것’은 선택이지만 중국을 정확히 ‘보는 것’은 필수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결국 당한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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