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1%대 물가는 체감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요리를 맡고 있는 터라 퇴근길에 장을 보거나 주말마다 마트에 가는 게 일상이다. 계산대 앞에 서서 영수증을 받아들 때마다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이거 조금 담았을 뿐인데 벌써 10만원이 넘네." 과자 몇 봉지, 달걀 한 판, 돼지고기 몇 근, 채소 몇 단.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면 사실 많이 산 것도 없다. 하지만 찍혀 나온 총액은 순식간에 지불 금액의 자릿수를 바꿔 놓는다.
가끔은 계산대 앞에서 장바구니 속 물건을 다시 꺼내놓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우유 두 통 중에 한 통만 살까, 아이가 먹고 싶다던 과자는 이번에 빼야 할까. 그러다가도 결국 가족을 생각하면서 다시 집어 넣는다. "내가 다른 지출을 줄이면 되지." 물가가 안정됐다는 뜻을 담은 뉴스 속 숫자와 달리 저녁 장바구니는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통계청이 발표한 물가가 낮게 나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SK텔레콤이 보안 사고로 고객에게 불편을 끼친 것에 대한 사과 차원에서 통신요금을 절반으로 깎아준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요즘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를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고, 정액제라서 매달 비슷한 금액이 나간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 역시 이번 달 요금이 얼마 줄었는지 따져본 적이 거의 없다. 휴대전화 요금이 줄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뉴스에 나오는 숫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라 전체 경제 흐름을 보여주는 나름의 거울이니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통계청 수치가 아닌 장바구니 안 물건 가짓수와 영수증에 찍힌 총액이다. 경기 안정을 뜻하는 지표들이 먼 나라 세상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생활인 대부분은 삶에서 물가를 느낀다. 그것은 저녁거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도 또 이렇게 많이 나왔네” 하고 중얼거리는 순간이고, 아이가 집어 든 과자를 살까 말까 망설이는 장바구니 앞의 순간이다.
앞으로 체감 물가가 낮아지기는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이상기후 때문이다. 역대급 가뭄을 겪고 있는 강릉 지역 고랭지 배추 재배에 문제가 생기면서 최근 배추 가격이 널뛰고 있다. 이처럼 곡물이나 채소, 과일처럼 날씨에 민감한 품목들은 기후변화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다. 현실 물가는 낮추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소비와 생산의 균형을 정밀하게 맞춰야 하는 쌀 역시 가격 문제가 늘 양쪽의 반발을 부른다. 쌀값이 떨어지면 농민들은 생계 위기를 호소하고, 반대로 쌀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장바구니 부담이 커졌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농가를 살피면서도 소비자 물가를 억제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균형 맞추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간 물가 정책은 소비자 할인 지원이나 일시적 쿠폰처럼 ‘지출을 줄여주는 방식’에 치중해 왔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체감 물가의 불만을 잠시 달랠 뿐이며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생산 기반이 흔들리면 다시 가격은 뛰기 마련이다. 이제는 농가 지원과 수급 안정을 위한 공급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생산비 절감, 기후 리스크 대응, 유통 구조 개선 같은 대책이 뒷받침돼야 지표 물가와 현실 물가의 괴리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의 총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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