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좋은 비는 때를 알아, 봄이 오면 내려 만물을 적시네)"
당 나라 시인 두보의 시(詩)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고(故) 리커창 전 중국 총리와 회담할 당시 한중관계의 새로운 발전을 이루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인용했다. 지난해 리창 중국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을 때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 시를 읊으며 그를 배웅했다.
이 구절은 한중 대표 합작영화 '호우시절'의 의 제목이기도 하다. 청두에서 촬영한 이 영화는 한중 대표 남녀 배우로 정우성·가오위안위안이 주인공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중 수교 33주년 기념일(24일)을 앞두고 이 영화가 문득 떠올랐다.
영화는 회사 출장차 청두행 비행기에 오른 건설 중장비회사 팀장 박동하(정우성 분)가 중국 시각에 맞춰 시곗바늘을 돌려 시간을 맞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첫날 청두 시내 명소 두보초당에서 미국 유학시절 첫사랑 같은 존재인 옛 친구 메이(가오위안위안 분)를 우연히 다시 만나는 동하. 오랜만의 재회에 설렌 둘은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때 우리가 사랑했을까”라고 장난치듯 되물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두 사람. 때마침 청두엔 봄비가 내리고, 메이는 "좋은 비는 제때 내린다(호우지시절)"라며 두보 시 구절을 읊는다. 인연과 사랑도 좋은 비처럼 제때 내린다는 메시지를 동하에게 전달한걸까.
그렇게 두 사람의 이별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공항에서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자 동하는 귀국을 하루 늦추면서까지 메이의 곁에 좀 더 머물기로 하는데.
이별의 시간을 앞둔 두 남녀의 모습은 비엔나에서의 꿈같은 첫 만남(영화 ‘비포 선라이즈’) 이후 9년 만에 재회한 제시와 셀린의 설렘을 그린 영화 ‘비포 선셋’을 떠올리게끔 한다.
영화 호우시절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의 간다’ 등으로 유명한 멜로 영화의 장인, 허진호 감독이 그린 사랑의 타이밍에 관한 영화로 할 수 있겠다.
“내가 처음부터 널 사랑했단 걸 지금이라도 증명한다면 달라지는 게 있을까?”라는 동하의 물음에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라고 답하는 메이. 영화는 시종일관 남녀의 사랑과 만남이 우연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둘이 맞물려서 이뤄지는 것인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이에 대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좋은 사랑은 때를 안다. 아니, 때를 아는 것이 좋은 사랑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적당히 가볍게 장난기 있는 정우성과 청순하면서 차분한 이미지의 가오위안위안, 두 남녀 배우의 호흡도 잘 어울렸다. 다만, 영어·중국어 대사가 많아 한국 영화임에도 자막을 봐야 한다는 불편함은 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두보초당, 판다의 귀여움을 느낄 수 있는 판다기지, 아이들이 바람개비를 날리는 콴자이샹쯔 거리, 저녁때 남녀가 함께 어울려 광장무를 추는 모습, 중국 식당에 가서 페이창펀(돼지내장면)을 먹는 장면까지, 미인 판다 술 요리가 유명하다는 쓰촨성 청두의 이국적 풍경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처럼 여행 마지막 날 현지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구우며 소맥 한잔 하는 것도 추억이 될 듯 하다.
한중 합작영화 중에는 장바이쯔(장백지) 권상우 주연의 그림자애인(중국명 影子愛人), 오기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바이바이허 펑위옌 주연의 이별계약(分手合约) 등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중 양국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교류와 우호적 감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호우시절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