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이재명-트럼프 첫 정상회담 성공을 위한 첫 단추 끼우기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오는 25일 첫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예정된 가운데 유관 정부 부처는 대비책 마련에 분주해 보인다. 이들이 현재 가장 집중하는 현안은 한미동맹 분담금, 우리 국방예산 인상, 그리고 한미동맹의 역할 변화 가능성 등이다. 특히 최근 이뤄진 관세 합의를 분담금 인상과 동맹 역할 변화에 대한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심사는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더 많은 한국의 투자를 확보하는 데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GDP 대비 방위비 5% 인상, 동맹 분담금 인상, 동맹 역할 변화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하기 위한 제조업 기반을 다지기 위해 해외 투자 유치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MAGA는 트럼프 1기 때부터 일관되게 이어져 왔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유연한 ‘리쇼어링(reshoring)’과 ‘디커플링(decoupling)’ 전략을 펼쳤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이를 조금 변형했으나 기본적으로 승계했다. 이른바 ‘프렌들리 쇼어링(friendly-shoring)’과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재포장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등을 통해 우방의 미국 제조업 투자를 유인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책은 중국의 4차 산업 분야 첨단 과학기술 도약을 억제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술 발전의 낙수효과로 중국의 군사력이 일취월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이 이렇게 쫓기는 상황에 처하자, 트럼프 2기는 조선업, 반도체, 2차전지 등을 포함한 제조업 기반 구축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존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관세 협정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고, 고관세를 동맹국에도 매겼다. 또한 동맹의 역할 변화를 통해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동맹의 자체 무기 생산 능력 확대를 유도하고, 더 많은 국방예산 편성을 주문했다. 즉, 주권 사항에 직접 개입하고 압박하는 ‘강압적 리쇼어링(coercive reshoring)’ 전략을 구사 중이다.

트럼프의 이러한 강압적 리쇼어링 전략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31일 미국과의 관세 합의가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미국에 2,500억 달러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천연가스 구매에 동의하고, 상호 관세율을 15% 선에서 합의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트럼프가 자신의 SNS에서 한국의 추가 투자를 기대한다고 밝힌 까닭이다. 그는 3,500억 달러의 합의금을 한국이 자신에게 ‘준 것(give)’으로 규정했고, 투자 수익의 90%를 자신이 가질 수(retain) 있는 근거로 대통령의 전권을 들어 투자금의 행방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2주 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더 많은 투자금을 제시할 것이라고 이미 예고했다.

관세 합의 보도자료나 그의 SNS에서 보듯 방위 분야에 관한 직접적 요구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당 사안의 의제화를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다. 이 문제가 당장 트럼프에게 시급한 현안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계는 아직 우리 편일 수 있다. 미국의 회계연도는 올해 9월에 종료된다. 내년도 회계연도에 반영하거나 그 중간에라도 충당할 수 있도록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련 사안을 의제로 던질 가능성은 있다. 다만 한미 양국의 협상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번 회담에서 언급하는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한미동맹의 역할 변화와 관련해서는 공동성명에 향후 발전 방향의 맥락에서 일정 부분 반영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방예산 증액(예: GDP 대비 5%)을 공동성명에 명시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비칠 여지가 크고, 주권국가의 국민 정서도 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과 트럼프의 임기는 중첩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의 강압적 리쇼어링에 임기 내내 끌려다닐 수는 없다. 그러려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MAGA 전략의 본질과 약점을 활용해 주도권을 쥐는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처지는 유럽과 일본과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우리만의 의제를 중심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MAGA는 미국 제조업을 일으키기 위한 자강 운동이다. 제조업 기반 붕괴로 미국은 기술 원천으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국이며, 제조업 부흥에 투입할 여력도 제한적이다. 동시에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점이 미국의 약점이다.

예컨대 미국은 해군력 증강을 위해 조선업에 관심을 기울이며 제조업 부흥을 도모하려 한다. 그러나 핵심은 중국의 해군력을 추월하는 것이 아니라 현 수준에서 견줄 만한 세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2024년 12월 발간된 《미 해군 전략 보고 2025》에 따르면, 미국은 노후함 퇴역과의 절충을 통해 현 수준의 해군력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더 이상 군함 수를 대폭 늘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조선업은 불모지와 같다. 조선소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우리의 상황은 어떤 동맹과 우방보다도 유리하다. 우리는 미국 동맹국 중 가장 큰 군사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무기체계도 갖췄다. 방위산업의 생산력은 세계적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화약과 탄약, 포탄 등을 대규모로 공급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미국과는 최대 규모의 연합 군사훈련을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하며, 상호 운용성도 높다. 따라서 미국이 우리에게 국방예산을 GDP 대비 5%로 인상하라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성을 얻기 어렵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최혜국대우(MFN) 적용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은 반도체 사양을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미국은 한국 의존도가 높다. 다른 나라와 동일하게 MFN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강하게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의약품 분야는 유럽이 강세이므로, 유럽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에 따라 우리의 관세 수준도 좌우될 수 있다. 우리는 EU와 유럽 제약사와 긴밀히 소통하며 전략을 공조하는 ‘지원군’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한편 철강과 알루미늄의 쿼터가 폐지되고 일괄관세 50%가 책정된 것은 미국의 제조업·조선업 부활 구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이 우방으로부터 수입한 철강과 알루미늄 비중이 각각 87%, 82%에 달했기 때문이다. 2024년 한국의 알루미늄 수출액이 전년 대비 52.2%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반도체와 관련해 중국 내 우리 반도체 공장의 연속성을 살리는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 미국 반도체 관련 제도는 7나노 이상 고사양 반도체의 중국 판매나 수출을 금지하고 있으나, 7나노 이하는 적용 범위가 다르다. 중국 내 생산 반도체를 7나노 이하로 제한해 중국 시장에서 판매하도록 하고, 7나노 이상은 한국에서만 생산하여 미국을 포함한 우방 시장에 수출·판매하는 틀로 협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반도체 기업이 미국 내 생산기지 구축에 투자할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트럼프가 원하는 2,500억 달러 투자 약속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작년 한 해 우리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의 대미 투자액이 39.2억 달러에 불과했고, 대미 총투자액도 220억 달러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TSMC 모리스 창과 엔비디아 젠슨 황 회장도 유사한 반도체 전략을 미국 측과 논의한 바 있다.

둘째, 미국 내 조선소 건설 사업과 투자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현재 미국 조선산업은 부활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 가동 중인 곳은 연방 조선소 1개, 민간 조선소 4개뿐이며, 이들의 생산력은 미미하다. 최근 몇 년 실적은 상선 한두 척 건조에 그쳤다. 이민 정책 등의 영향으로 숙련 노동력 조달도 쉽지 않다. 《미 해군 전략 보고 2025》의 제안에 따라 미 정부가 양성 훈련 프로그램에 정책 지원과 예산을 투입했지만, 지원율이 10% 미만에 그쳐 사실상 실패로 평가됐다. 보고서가 제시한 바와 같이 미 해군함은 소형화·경량화로 전환 중이다. 국지전에 대비해 기동성과 민첩성을 강화하고, 중대형 군함의 퇴역과 감산으로 예산을 절충하려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이러한 함종에 대해 기한 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는 생산 역량을 강력히 어필해야 한다.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미 의회는 1920년 제정된 ‘존스법(Jones Act)’ 개정안을 상정해 동맹에도 미 군함 건조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미국의 약점과 우리의 강점을 외교적으로 결합해 한국에서 미 군함을 건조할 길을 열어야 한다. 이는 국내 경제 부양, 지역 경제 활성화, 기술 이전 등 일거삼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기술 이전과 관련해서는 동맹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을 공고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MAGA 전략의 약점을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한다. 미국은 높은 부채와 인플레이션으로 재정 여력이 제한적이다. 관세 수익 수천억 달러로도 부채 이자를 충분히 상쇄하지 못한다. 이럴 때 우리는 이러한 구조적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해야 한다. 미국이 방위비와 국방예산 문제를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연계해 제기할 수 있다. 최근 괌 이전설도 거론된다. 이는 해군력 부족으로 제1도련선 방어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제2도련선으로의 후퇴 가능성을 고려한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미국이 다방면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만의 의제를 중심으로 전략적으로 미국을 집중 공략하는 외교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웨슬리언대 정치학 학사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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