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외국인 간첩법' 제정을 위한 선결 조건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최근 외국인 간첩법을 제정하자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중국인들의 유사 또는 실질적인 간첩 행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 간첩 행위로는, 작년 6월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을 드론으로 불법 촬영한 사건(중국인 3명 검거), 11월에는 국정원 건물 촬영 중국인 검거, 지난 3월에 우리 군을 포섭한 중국인 간첩 사건, 그리고 지난 4월 21일 오산 공군비행장의 불법 촬영 등이 있었다.

실질적인 간첩 사건은 우리 현역 군인이 중국에 포섭된 사건들이다. 한미연합훈련 관련 정보를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우리의 현역 군인이 2024년 7월에 체포되었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해 8월 27일 우리 군 정보사령부 소속의 군무원이 군사 기밀을 중국 측에 넘긴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2017년부터 이런 공작에 가담했으나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본격적으로 정보를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올해 3월 29일에는 중국인 간첩이 체포되었다. 그 역시 우리의 현역 군인을 포섭하여 지난해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우리 군의 기밀을 넘겨 받았다. 중국인이 간첩 혐의로 체포된 첫 사례다. 그는 지난 25일 기소되었다.

이들 사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유사 간첩 행위를 벌인 이들은 평범한 중국인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10대 중국 청소년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 ‘공안’, 즉 우리의 경찰관이었다. 실질적인 간첩 활동한 중국인들은 중국군 소속이었다. 이처럼 유사 간첩 행위자들은 관광객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평범한 중국인들이었다. 둘째, 솜방망이 처벌에 이들은 우리 사법 당국의 감시에도 개의치 않고 반복적으로 행한다는 점이다. 가령, 불법 촬영한 이들은 석방된 후 또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셋째, 이들의 촬영 기법이 전문가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휴대폰 이외에도 DSLR 카메라(일명 ‘대포카메라’, 초근접 가능의 대형 망원렌즈 장착 카메라)와 드론 등을 이용했다. 드론을 이용한 불법 촬영은 심각한 위법 사항이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드론 면허를 소지할 리 만무했고, 촬영 허가도 받지 않았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관련 간첩 행위에서 처벌 받은 이들 대부분이 우리 국민에 국한된 사실이다. 대신 중국인들 대부분은 석방되었다. 처음으로 중국인이 기소되었지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에 준하는 처벌로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행각이 명백한 간첩 행위였음에도 간첩 행위로 처벌하지 못하는 데 개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외국인(중국인)들의 간첩 행위가 기승하는 가운데 우리만의 외국인 간첩법 제정이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작년 11월에 간첩법을 개정한 외국인 간첩법 안건이 국회의 법사소위원회를 통과하여 전체 회의에 상정되었다. 야당 의원들이 개정의 필요성에 동의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후 이들의 태도가 전환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최재형 전 의원이 외국인 대리 등록법(일명 ‘FARA법’)을 발의했으나 소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다. 대신 국가보안법의 개정과 폐지를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외국인 간첩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는 국제화되었기 때문이다. 연간 외국인 방문객 수가 1300만이 넘는다. 2023년 기준 외국인 체류자 수는 250만명 이상이며, 외국 법인 수도 2022년 기준 1835개를 선회한다. 제주도는 외국인 방문객에게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지역이다. 중국인 불법 촬영자들이 활개치는 이유 중 하나가 제주도를 통해 수시로 입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어쩌면 이미 외국인 간첩에게 제약 없는, 자유롭기 짝이 없는 나라로 전락한 지가 오래되었을 법하다.

우리가 이들의 간첩 관련 행동 가능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간첩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안보 불감증이 도를 넘어 외국인들의 유사 또는 실제 간첩 행각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형국에 놓여 있다. 국가보안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의 폐지나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 역시 안보 불감증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현실을 무시하는 처사로 일관하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헌법 때문에라도 이는 어불성설이다. 헌법은 한반도의 모든 영토 및 도서를 우리의 주권 영토로 정의한다. 그래서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으로 여긴다. 북한 정권을 반국가단체로 정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북한 정권의 존재를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반국가단체에 이로운 언행을 우리 헌법은 ‘이적’ 행위로 규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의 개정은 헌법 개정을 의미하게 된다. 아니면 폐지가 능사가 되어 버린다. 

간첩법 개정안의 발의 이유도 1950년대에 제정된 사실이 한몫한다. 오늘날 국제화가 된 대한민국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가령 동 법안 98조의 경우 ‘이적’ 행위에만 간첩죄의 적용을 허용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적국으로 정의할 수 있는 나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정부가 이를 결정할 의사마저 가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정권도 북한을, 또는 중국을 우리의 적국으로 간주할 리 만무했다.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그 어떠한 간첩행위에 대한 처벌이 필요함에도 말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 때 대통령실에 대한 미국의 도감청이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설이 있었다. 사실이라면 이는 엄연한 간첩 행위다. 오늘날의 간첩이나 간첩 행위를 벌이는 자들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정교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인 간첩법의 제정은 시급하다. 그러나 이 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3위 일체’가 구성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법이 제정되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고 국민들이 이를 준수하고 협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간첩법의 제정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외국인 간첩법이 제정되어도 현재 우리나라에 이를 집행할 기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2024년 1월부로 국가정보원은 대공수사권을 박탈당했다. 대공수사권은 북한의 간첩 행위에 대한 관찰, 조사, 수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방첩 활동을 포함한다. 즉, 국적을 불문하고 유사 간첩 또는 실질적인 간첩 행위를 방지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정부는 국정원의 방첩 기능을 경찰청 외사과로 이첩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방첩 활동은 단순한 인력과 조직만으로 진행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조직 문화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방첩 활동은 1년 열두 달 동안 24시간 계속해서 집중해야 하는 성격의 임무다. 그리고 그만의 노하우가 수반된다. 이런 노하우는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고 수십년간의 시행착오와 반복된 훈련만으로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찰 능력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거의 매일 같이 있는 시위에 경찰이 동원되어야 하고, 늘어나는 강력 범죄 사건에 경찰의 인력도 한계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차기 야당 대선 후보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하려 해서 우려된다. 국방부 소속의 방첩사령부(방첩부)마저도 폐쇄하고 축소하겠다는 그의 주장 때문이다. 상기한 중국인 간첩 사건은 국정원, 경찰, 방첩부가 공동 작전을 펼친 결과임에도 말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과 방첩권의 복원이 요구되고, 국방부 방첩부의 축소나 폐지가 아닌 확장이 필요하다. 

우리가 외국인 간첩법의 제정 필요성에 의식을 가진 사실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법 또한 순서가 있고 기반이 필요하다. 외국인 간첩법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를 수반하고 지원할 수 있는 법안 제정이 선제해야 한다. 외국인 간첩법만 존재하면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후속 대처 법안으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전 예방, 방지의 효력이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외국 대리인 등록법(일명 ‘FARA’법)이 선제적으로 제정되어야 한다. 

이 법안을 통해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연간 평균 1000만명 이상의 외국인, 국내 거주 250만명의 외국인, 국내에서 활동하는 2000여 개 외국 법인의 활동 내역과 동선을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외국 대리인 등록법 제정의 또 하나의 효과는 이들 외국인들에게 경각심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즉 허튼짓을 안 하게 할 수 있겠다. 역설적이지만 하더라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할 수 있겠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여 이 법안의 제정이 필요하다. 이 법안이 부여하는 권한을 가지고 우리 법무부와 정보 당국이 이들의 이 같은 ‘신중한 행동’을 관찰하고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외국인 간첩 활동이 기승하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외국인 간첩법과 외국 대리인 등록법과 같은 법안 제정에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보안법의 철폐나 개정을 요구하는 이들에게도 북한에 대한 우리 헌법의 정의를 개정하지 않으면 존속해야 하는 이유도 적극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개헌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만약 국가보안법을 위해 개헌을 단행할 경우 이는 우리 정부가 결국 북한이 천명한 ‘두 국가론’을 수용하겠다는 처사로 비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주권 주장이 종식될 것이다. 그리고 대국민 홍보를 통해 외국인 간첩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외국인의 간첩 행위를 신고한 이들의 대부분이 우리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의 방첩 의식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의사결정자들의 외국인 간첩에 대한 부족한 의식이 더 심각한 문제로 드러나는 현실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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