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앞두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ICD-11) 도입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21일 게임업계는 정 후보가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통해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부처로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체계 개정안을 채택했다"며 "민관협의체 논의를 통해 관련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사실상 기존 의료계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학계는 오는 8월 중 공청회나 공개 토론회를 추진해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최근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채널에서 "정부가 바뀌었지만 게임계를 둘러싼 규제의 시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게임을 유해물질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지속되고 있다. 당대표 선거가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이전 게임산업 진흥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게임특별위원회 설치 등 게임 업계에 우호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정부의 최종 방침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보건복지부가 최근 작성한 일부 자료에서 인터넷 게임을 술, 약물,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항목으로 표현하며 논란이 재점화됐다.
WHO는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공식 분류했고, 국내 도입 여부는 국무조정실 산하 민관협의체에서 논의돼 왔다. 그러나 게임업계에서는 해당 논의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협의체 구성이나 활동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다는 불만이다. 협의체에 일부 게임업계 인사들도 포함돼 있으나, 실질적인 의견 반영보다는 복지부가 기존 의료계의 입장만 반복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게임을 중독성과 해악이 있는 행위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다. 이 같은 인식이 정책에 반영될 경우 '게임=중독'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되고, 게임을 즐기는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낙인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술이나 담배처럼 규제 대상이 되고, 관련 세금이 부과되는 등의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국내 게임산업은 연매출 20조원, 수출 10조원에 이르는 전략적 문화산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고용 축소와 함께 대외 신뢰도 하락 등 부정적 파급효과는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산업 진흥 기조에 대한 기대감이 사실상 꺾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실망감은 크다.
WHO의 ICD-11을 채택한 국가들 가운데 게임이용장애를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한 국가는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은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 중이지만, 일본은 문화산업 진흥을 이유로 질병코드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유럽 국가들 역시 상담 및 치료 중심의 접근을 택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질병코드가 도입된다면 게임인을 포함한 산업 전반의 실망감은 물론, 그 여파는 상상 이상의 규모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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