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성어로 세상 읽기](47) 조조의 능력제일주의 - 유재시거(唯才是舉)

유재혁 칼럼니스트
[유재혁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중장년 이상의 연령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중국 고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열이면 열 '삼국지(三國志)'를 첫손에 꼽지 않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량, 조자룡 등 기라성 같은 등장인물들과 줄거리를 훤히 꿰고 있는 소위 '삼국지 키드'가 우리 주변에 흔하다. 삼국지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도원결의, 삼고초려, 읍참마속, 괄목상대와 같은 고사성어의 산실이기도 하다.

사실 삼국지는 서진(西晉)의 진수가 오나라 멸망 직후 정사(正史)를 편찬한 역사책이고, 우리가 삼국지로 알고 읽은 것은 원말명초 때 나관중이 삼국지를 토대로 하여 쓴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로 정식 명칭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다. '연의(演義)'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소설'을 뜻하는데 '사실을 과장하다'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삼국연의'는 이름 그대로 나관중이 위, 촉, 오 삼국의 역사에 창작과 각색, 과장을 곁들이는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대중적 흥미를 극대화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조조다. 우리가 흔히 유비를 주인공으로 알고 있는 이유는 위(魏)를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한 진수와 달리 촉(蜀)이 후한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본 후대의 사관을 나관중이 소설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삼국지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무엇일까? 적벽대전이다. 적벽대전은 중원과 하북을 평정한 후 남하하던 조조와 그에 맞선 유비와 손권의 연합세력이 겨룬 전투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제갈량의 지략에 말린 조조의 참패로 끝났다. 조조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장강 이남을 넘보지 못했고, 적벽대전은 일찌기 제갈량이 구상한 천하삼분지계가 현실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조는 적벽대전 참패의 원인이 인재의 부족에 있었음을 절감하고 패전 2년 후인 서기 210년, 인재를 널리 구하는 '구현령(求賢令)'을 공포했다. 핵심 골자는 다음과 같다. "그대들은 나를 도와 숨어 있는 인재를 널리 찾아내 오직 재능만을 기준으로 천거하라. 내가 그들을 등용할 것이다(二三子其佐我明揚仄陋, 唯才是舉,吾得而用之)" 재능만 있으면 도덕적 흠결이 있든 출신이 미천하든 따지지 않고 쓰겠다는 선언이다. 구현령은 진수가 쓴 삼국지의 '위서(魏書)ㆍ무제기(武帝紀)'에 기록되어 있으며 성어 '유재시거(唯才是舉)''의 유래가 되었다. '오직 재능만 보고 천거하라'는 '유재시거'는 조조의 능력제일주의를 상징한다. 

구현령은 당대의 지배적 관행이던 문벌 귀족 중심의 인재 등용을 뒤엎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혼란한 난세에 인재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유교적 명분이나 도덕성보다 실용적인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조조는 자신의 이런 인재관을 구현령을 통해 실천에 옮겼다. 구현령은 인재 발탁의 풀을 획기적으로 넓혔고 그렇게 발탁된 인재들은 국력 신장의 동력이 되었다. 훗날 사마의 가문이 위나라 정권을 찬탈하고 세운 서진이 촉, 오를 멸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바탕에 조조의 능력주의 인재 등용 방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대의 학자, 문인들은 구현령을 평론하면서 주(周) 문왕이 신분이 미천한 강태공을 발탁하고, 형수와 사통하는 패륜까지 저지른 진평을 유방이 오로지 능력 하나만 보고 등용한 사례에 비유할 정도로 높이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의 1기 내각 구성을 위한 인사청문회 '수퍼위크'가 지난 금요일 막을 내렸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증인도 자료 제출도 없는 '맹탕 청문회', 부인과 버티기로 일관한 '침대 축구'는 여전했고 국회 청문회는 사실상 통과의례로 전락했다. 장관 후보자들 역시 '배추 총리'라는 비아냥을 듣는 김민석 총리에 뒤질새라 갖가지 흠결이 드러나고 적격성 논란에 휩싸이며 갑질 장관, 이해충돌 장관, 위장전입 장관 등의 꼬리표가 붙었다. 

야당의 검증 공세와 여론의 질타는 강선우 여가부장관 후보자와 이진숙 교육부장관 후보자에게 집중되었다. 논문표절 의혹이 불거진 이진숙 후보자는 그것만으로도 결격 사유가 충분하다. 강선우 후보자에게 제기된 문제는 좀 더 고약하다. 강 후보자는 보좌관들에게 업무와 무관한 허드렛일들을 수시로 시켰는가 하면 병원에 가서도 규정을 무시하고 금뱃지의 위세를 부렸다. 이른바 보좌관 갑질, 병원 갑질이다. 갑질은 우리나라 최상위 법인 헌법보다 힘이 세다는 국민정서법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이다. 강 후보자는 거짓 해명에 보좌관 취업 방해 의혹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강선우 후보자와 이진숙 후보자만큼은 지명을 철회하라고 압박했다. 단 한 명만 낙마해도 대통령에게 타격이라며 전원 통과를 강조하던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심하던 이재명 대통령은 이진숙 지명 철회, 강선우 임명 강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재명 정부가 중시하는 '유능함'을 기준으로 삼아 결정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인데, 납득하기 어렵다. 세간의 해석도 크게 다른 것 같다. 현역 의원 프리미엄에 강선우 후보자에 대한 대통령의 총애가 남다르기 때문이라는 거다. 정치적 장래를 배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하긴 이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단식했을 때 살뜰하게 이부자리를 챙겨 주던 강 후보자 아니던가. 갑질에 시달린 보좌관들도 보복이 두려워 차라리 강 후보자가 임명되기를 바랐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재명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기준은 무엇인가. 마치 조조의 구현령을 벤치마킹이라도 하듯 이재명 정부도 '능력'을 유일한 인사 기준으로 내세웠다. 흔히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로 번역되는 '능력주의'의 장단점을 여기서 논할 바는 아니지만, 능력이란 대단히 모호한 척도다. 능력을 평가하는 과정이나 수단 등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도 적지 않고 세간의 평판도 전적으로 믿을 게 못된다. 게다가 지금은 능력도 세습되는 시대이고 보니 공정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이 대통령은 후보자들의 능력을 제대로 검증은 했을까?

세상만사가 대개 그러하듯 조조의 구현령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았다. 능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품행이 바르지 않거나 탐욕스러운 인물들도 등용되어 초래되는 문제가 많았다. 이들이 사심을 앞세우고 국가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아 공직사회의 기강이 흔들렸고, 조조 사후 권력 승계 과정에서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위나라가 3대 만에 몰락하는 원인이 되었다. 

위나라 사례에서도 보듯 능력만 보고 뽑은 인재들이 결국은 나라에 큰 폐해를 끼치기 쉽다. 오로지 능력만을 외친 직전 윤석열 정권도 훌륭한 반면교사다. 민주사회에서 공직자는 도덕성과 품성에 대한 신뢰 없이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기도 힘들다. 약자를 보듬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면서 약자 위에 군림해 갑질을 일삼아 온 강선우 후보자에게서 조국의 위선이 연상된다. 문재인 정권을 뒤흔든 '조국 사태'도 임명 강행으로부터 시작됐다. 

아끼던 장군 마속이 군령을 어기자 제갈량이 군기를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듯 원칙을 위하여 자기가 아끼는 사람을 버리는 게 '읍참마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런 심정으로 엄정 인사의 본보기를 보여 줄 것을 기대했지만, 아끼는 사람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버렸다. 도덕성과 품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역 의원 불패와 강선우 후보자에 대한 총애가 각별하다는 사실만 확인시켜 준 이재명 정부의 어설픈 능력제일주의가 왠지 불안하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