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의료복지. 문화유산 '이건희즘'...功은 功으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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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입력 2021-05-04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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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세돈 교수 제공]

이건희 회장이 작고한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 신경영, 일체교체론, 위기상수론 등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탁월한 식견과 경영성과로 삼성과 대한민국을 반도체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그의 공적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보수진영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 진보적인 인사들마저 일개 국내기업을 세계기업으로 키운 그의 공을 인정했다.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경제 업적을 남기며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은 이제 또 다른 두 가지 유업을 통해 세인을 놀랍고 숙연하게 만들었다.

하나는 그의 유지에 따라 감염병과 소아암 치료·연구와 같은 의료복지 사업에 1조원을 기증하기로 한 결정이다. 절반인 5000억원은 중앙감염병 치료전문병원을 건립하는 데 쓰고 2000억원은 감염병 연구를 위한 최첨단연구소 건립에 투입된다. 그리고 소아암환자 치료를 위해 3000억원이 지원될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사스, 메르스 등과 같은 급성 감염병이 급속히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연구와 치료 대응체계는 미흡했다. 이에 정부는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19 대유행 이후 국가 차원의 방역과 보건 기능 강화를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확대 개편하고,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의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개편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의 유지에 따른 감염병 치료·연구기관을 위한 대규모 지원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다. 기증되는 자금이 정부 연구기관으로 출연되어 쓰일지 아니면 독자적인 기관을 설립할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감염병 관련 의료복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할 것이고 민간은 민간대로 독자적인 연구 및 치료센터를 설립하는 것이 선의의 경쟁을 촉진하여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의료복지 증진, 특히 어린이 복지에 대한 헌신은 급조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매진해 왔던 일이다. 1982년 동방사회복지재단을 모태로 하여 1989년 12월 설립된 삼성복지재단은 천마어린이집을 서울시에 기증한 사업으로부터 매년 셀 수도 없는 어린이집을 열어 시에 기증하거나 직접 운영해오고 있다. 홍익어린이집, 상도어린이집, 꿈나무어린이집, 미아 샛별어린이집 등이 서울시에 기증된 어린이집들이다. 1991년 11월부터는 매년 전국의 우수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여 IMF 사태 직후인 1998년 2월부터는 ‘작은 나눔 큰사랑’ 지원금으로 확대하였고, 2000년 7월부터는 ‘함께 만드는 좋은 어린이집'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드림클래스라는 중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학 캠프를 개설하고 주중·주말 교실을 열어 수만명 학생을 참여시켰다. 1991년 4월 삼성복지재단을 삼성생명공익재단으로 명칭을 바꾼 뒤 1994년 11월 삼성서울병원을 개원하여 국내는 물론 세계 초일류 의료시설로 발전시킨 것이 모두 이건희 회장 때의 일이다. 이런 이건희 회장의 오랜 복지지원 사업을 알면 이번의 의료아동복지 지원기증금 1조원은 전혀 어색하거나 생경하지 않은 일이다.

다른 하나는 3조원에 달하는 국보급 문화유산을 공익을 위해 투척한 결정이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과 2만1600여점에 달하는 고서와 고지도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고,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 미술품 16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문화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야말로 속되고 천박한 일이지만 3조원보다 많든 적든 간에 평생을 수집하고 아끼고 보관하던 것을 나라에 흔쾌히 던지는 일은 범생(凡生)으로서는 생각조차도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과거를 돌아보면 반도체 사업 못지않게 깊이 문화, 특히 미술과 국악 보존에 심취한 것을 알 수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1965년 4월 이병철 선대회장 때 설립되어 1977년 11월 삼성미술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8년 5월 호암미술관이 준공되면서 이병철 선대회장이 보유하던 소장품을 그해 10월 기증하였다. 이에 힘입어 1985년 12월 호암미술관은 박물관법에 따른 사립박물관 제1호로 등록되었다. 1992년 10월 삼성미술재단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1995년 6월 재단 명칭을 삼성문화재단으로 고치고 문화보존의 영역을 미술품에서 국악, 고전음악 및 현대미술 등 다양한 분야와 사업으로 확장했다. 특히 1990년부터 서울국악경연대회, 1996년부터 국악동요제를 매년 개최함으로써 국악 발전과 국악인의 발굴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2005년에 삼성어린이박물관을 개관하여 1000만명에 달하는 어린이에게 문화를 알게 하는 기회를 열어 주었던 것도 모두 이건희 회장이다.

미술작품, 특히 고귀한 미술작품을 수집하는 취미야 대부호들에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호사다. 렘브란트 수집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가, 독일의 티센가, 영국의 세이모어가, 미국의 헨리 프릭·게티가·구겐하임가·JP 모건가·필립스가, 포르투갈의 굴베키안, 러시아의 세르게이 스슈킨, 일본의 사지가·오카다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집가들은 작품의 수집·보존에만 열의를 보였지 이건희 회장처럼 국악과 같은 나라의 고유 전통문화를 발전시키고 인재를 개발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수집에 열을 올린 것이 투자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여 수집한 것도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문화유산 수집은 수집을 위한 수집이 아니라 문화를 지키고 전승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수집이었다. 미술품 대수집가들 중에는 적극적인 자선 사업가들도 일부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처럼 수십년 동안 수백개가 넘는 어린이집을 개설하고 꾸준히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고 효행상을 수여하며 고유문화를 지키려 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76년 일생을 통해 조용하고 나서지 않으면서 묵묵히 실천에 옮긴 이건희 회장의 민족문화유산 지키기와 어린이 복지 및 의료 복지를 위한 헌신 노력은 이번 유산 1조원의 의료복지 지원과 3조원의 문화유산 기증액을 수십배, 수백배 뛰어넘는 고귀한 정신이다. 이런 깊은 정신을 조금도 챙겨보지 않은 채 최대 재벌이라는 이유만으로, 무노조 경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에 어두운 역사를 남겼다고 매도하는 것은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평가가 아닐 수 없으며, 향후 재판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저의가 깔린 경박한 꼼수로 치부하는 것은 더더욱 경박하며 고인과 그의 업적을 고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명예를 추락시키는 일일 것이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 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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