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갑질 횡포]① 어느 방송작가의 한숨 "우린 작가가 아니라 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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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19-05-2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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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질이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 저래라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뜻한다."

최근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대표적 사례다. 김만식 몽고식품 명예회장과 이해욱 대림기업 부회장이 운전기사를 폭행한 사건도 이어졌다.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자택 인테리어공사 도중에 직원들에게 내뱉은 폭언은 충격적이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여승무원에 대한 갑질 논란,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 관련 보도는 '갑질'이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 지를 보여줬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을 뒤집는 비인간적, 비도덕적인 갑질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대중들은 공분했다. 갑질이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집, 학교, 직장 등에서도 '갑질'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직급, 연공서열, 소속 등을 통해 '갑'과 '을'로 서열이 나뉘기 때문이다. 

갑질 논란은 이제 대기업 만의 문제가 아니다. 연예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연예계에서 '갑질 횡포'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갑질'[사진=게티 이미지]

아주경제는 연예계 속 갑질 횡포에 고통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여러 관계자들을 만났다. 하지만 현직에 있는 관계자들은 "부담스럽다",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어떤 보복을 당할지 두렵다"며 입을 모았다.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연예계 갑질에 관해 인지하고는 있고, 문제점 역시 알고는 있지만 나서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소수의 관계자와 한때 연예계 몸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에 응해 준 전직 연예계 관계자들은 "이 인터뷰로 무엇이 달라지겠냐"며 반신반의했다. 그래도 그들은 "이제는 갑질 횡포가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의 바람을 담아 무거운 마음으로 '연예계 갑질 횡포'를 시리즈를 엮어 본다.

"막내 작가일 때, 한 PD님께서 제게 그러셨어요. '작가는 술만 잘 먹으면 된다'고. 자기는 면접 볼 때도 주량이 어떻게 되냐고만 물어본대요. 술자리가 깊어지자 대놓고 성희롱을 하고 싫은 내색을 하면 '내 농담이 기분 나빠? 웃자고 한 소린데'하면서 도리어 화를 내요. 그럼 다들 기분 나빠도 웃을 수밖에 없어요. PD님이니까요."

A씨는 방송국 작가 출신이다. 쉬는 날 없이 매일 출근하고 밤낮 없이 근무해도 막내 작가에게 돌아오는 급여는 130만원이다. 근로 계약서는 커녕 4대 보험도 안 되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우리끼리는 '작가'를 '잡가'라고 불렀어요. PD님 메인 작가님 등 이른바 '갑'들의 잡일을 도맡아 한다고요. 이를테면 은행업무부터 집안일 같은 일까지요."

작가 A씨는 안 해 본 일이 없다고도 했다. A씨는 막내 작가로 일하는 동안 '잡가'로서 은행업무부터, '갑'의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 집안 행사에 참여해 일하는 등 그야말로 잡다한 일을  해야 했다. 이런 일들이 막내 작가라면 으레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누구나 해왔으니 당연히 A씨도 해야 한다고 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갑질은 대물림되고 있다.

그런데도 A씨는 방송국 생활이 익숙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괴롭고 피폐해져만 갔다고 토로했다. 근무하는 동안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기 시간은 커녕 먹는 것부터 자는 것, 씻는 것 등 기본적인 권리까지 누리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그런 데다가 갑들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감정 쓰레기통'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연예계 판치는 갑질 횡포[사진=게티 이미지]

"저는 그분들의 감정 쓰레기통이었어요. 제 의견 같은 건 필요 없었죠. 그저 '네' '네 알겠습니다'라고만 해야 했고 반기를 드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는 왜 그토록 고된 방송국 생활을 버텨왔던 걸까. A씨는 처음이기 때문에, 견디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 때문에 버텨왔다고 말했다. 

"방송국이 제 첫 직장이었어요. 힘들다고 몇 개월만 하고 그만두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다 제 꿈이기도 해서 '조금만 버티면 좋아질 거야'라며 저를 다독였어요. 실제 선배들도 제게 그런 조언을 해줬고요."

A씨는 도무지 오르지 않는 월급, 열악한 근무 환경, 고통 받는 동료들을 보면서 결국 방송 작가 일을 그만뒀다. 일주일 내내 밤낮 없이 일하고 자료 조사부터 논문 조사까지 하는데도 얻는 건 조금의 돈과 스크롤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보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130만원으로 시작해서 몇 년째 일해도 돈이 오르지 않더라고요. 당시 제가 2~3년 차였는데도 160만원가량밖에 벌지 못했어요. 제 동료는 월급을 상품권으로 받고 그만뒀어요. 그 정도로 열악해요. 더이상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리랜서로 일하며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방송작가들이 모여 방송작가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A씨는 "소문이라도 나면 써주질 않으니 작가들의 참여율도 저조하고 가입하려고도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물림 되는 악습에 대해 A씨는 "개선될 것 같지 않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갑질 문화가 이미 만연하게 깔려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어려울 거라고 봐요. 위에서부터 바뀌어야 하는데 갑들이 바뀌겠어요? 을들은 무서워서 말 한마디도 못 하는데 말이에요. 예전보다는 바뀌었다고 하는데 저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저 '위'에서부터 달라지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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