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스페셜-임시정부의 맏며느리 수당 정정화⑮]등장인물:숨은 영웅 나월환·청산리 대첩 주역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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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입력 2018-04-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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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청년전지공작대 환송식(1939.11.17) 가운데 줄 오른쪽 끝이 대장 나월환.아랫줄 오른쪽 끝이 백범 장남 김신.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송죽 나월환. 사진=아주경제DB]

송죽(松竹) 나월환(羅月煥, 1912~1942) 
청년 정예병사 길러낸 숨은 영웅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가쿠인(靑山學院)에 입학하고, 훗날 천황 암살 기도 사건으로 유명해진 박열(朴烈) 등과 교류하며,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1932년 상해로 망명, 철혈단(鐵血團)을 조직해 항일투쟁에 나섰다. 황푸군관학교를 제8기생으로 졸업했으며, 난징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임정 요인들과 연락했다.
1939년 11월, 충칭에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결성하고 대장을 맡았다. 시안(西安)을 근거지로 산시(陝西), 허난(河南), 허베이(華北) 3개 성에서 초모사업을 비롯한 일선공작에 진력해, 백명 이상의 청년들을 항일진영으로 포섭했다. 광복군 창설 뒤, 청년전지공작대가 광복군 제5지대로 재편되면서 지대장에 임명됐고, 계속해서 일본군 점령지역에 대한 초모․선전․첩보 및 유격전을 수행하던 중, 변절자의 흉탄에 목숨을 잃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청사 조성환.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청사(晴蓑) 조성환(曺成煥, 1875~1948)
청산리대첩의 주역… 임시정부 군무총장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00년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 부정부패에 찌든 군부를 숙정하려다 발각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3년만에 특사로 풀려났으나, 사직하고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 항일구국운동에 나섰다. 1907년 연해주로 망명, 헤이그밀사 파견을 도왔고, 1912년에는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를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군무부 차장에 임명된 뒤 만주로 돌아가, 서일(徐一), 김좌진(金佐鎭) 등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결성해 청산리대첩을 이끌었다. 대종교에 가입하고,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했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총장에 취임했으며, 광복진선에 이동녕과 함께 참여했다. 광복군 창설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해방 후 귀국한 뒤에는 성균관 부총재를 지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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