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政經] 지방분권,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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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
입력 2017-11-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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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인재 발탁시스템이 지방자치 앞당겨

[사진=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 ]


정부(Government)는 한 마디로 ‘예산과 자원’을 분배하는 통치도구이다. 근대국가 성립 이전에도 세금 수탈에 견디지 못한 지방민들의 난이 끊이지 않은 건 중앙정부로 집중된 왕권이 지나치게 비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역사는 중앙과 지방이 ‘예산과 자원’의 분배를 두고 투쟁해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0년이라는 짧은 민주공화국 기간이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 민주주의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1952년 4월 25일 첫 번째 지방자치선거인 시·읍·면의회선거가 실시됐다. 이때는 한국전쟁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선거 미실시지역도 적지 않았다. 이후 5·16 군사정변으로 중단됐지만 1991년 시·군·구의원선거가 맨 먼저 부활됐고, 1995년부터는 시·군·구의회의원부터 시·도지사 및 시·도교육감까지 동시선거를 치르고 있으며 내년 6월에는 벌써 7회째를 맞는다.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991~1995년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은 21.2% 수준이다. 지방자치단체 결산결과가 종합 중이지만 지난해에도 이 수준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을 약속하고 출범했다. 문 대통령은 그의 정치적 스승이자 동지인 노무현 전 대통령 유지인 자치분권을 5·9 대선에서 이미 주요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핵심은 첫째, 대통령과 시·도지사가 정책을 논의하는 제2국무회의를 제도화하고 둘째,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정부로 명칭을 변경하며 셋째, 자치입법권·행정권·재정권·복지권 등 4대 지방자치권을 헌법화하는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연방제에 준하는 강력한 지방분권공화국’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지방자치의 날을 맞아 향후 5년간 추진할 자치분권 로드맵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장기적으로 6대4 수준까지 개선하고, ‘지방이양일괄법’을 제정해 현재 약 7대3인 국가 대 지방사무 비율 중 지방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로 한다는 내용이다. 풀뿌리 주민자치 강화를 위해 주민투표·소환 제도 요건도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무장관인 김동연 재정부총리는 대통령이 추진하는 지방분권 로드맵에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달 국정감사 답변에서 그는 “현행 8대2 수준인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을 7대3을 거쳐 장기적으로 6대4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은 행정안전부의 안이다. 우리는 여러 다른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는 지방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단일국가의 평균(15.7%, 2014년 기준)보다 높은 23.1%인 데다, 총 조세수입 중 지방정부가 사용하는 재원비중이 65% 이상으로 중앙정부에 비해 재정여건도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지방재정은 국가와 지방 간 재원을 배분하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물론 백 번 옳은 말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 28개국은 총 1000원(세입 총액을 1000원으로 봤을 때)의 세금을 걷어 중앙 및 지방정부가 각각 523원, 477원씩을 나누어 가졌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직접 징수하는 지방세가 477원은 아니다. 연방국가로 지방분권 선진국인 독일은 2016년 전체 세입 결산액이 약 7057억 유로이다. 이 가운데 71.5%를 지방정부가 사용했으나 지방세 수입은 54.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중앙정부 분권 교부세이다. 지방자치가 활발한 네덜란드 지방정부의 지난해 세입도 중앙정부 대비 5.9%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 세입 1656억 유로의 41.8%를 지방정부가 사용했다. 결국 이들 나라는 예산 자원을 제대로 분배하는 사람과 시스템이 제대로 완비돼 있는 셈이다. 

지난달 26일 출범한 네덜란드 마르크 뤼터 3기 내각은 지방의원 출신 천국이다. 24명 각료 가운데 무려 20명이 시·정·촌의원 또는 주의원 출신이며, 아예 하원의원 무경험자도 4명이나 된다. 제1부총리 겸 보건복지부 장관 휴고 데 존지(40)는 암스테르담 시의원과 암스테르담 선출직 행정관 경험이 전부이다. 중앙정치는 하원의원 보좌관과 기민당 전문위원 경험이 전부다. 제2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 카 이사 올론그렌(50) 역시 암스테르담 시의원 출신이며 하원의원 경험이 없다. 그녀는 선출직 암스테르담 제1부시장을 거쳐 부총리로 직행했다.

이 밖에도 경제·기후정책담당 정무장관을 맡은 모나 카이저(49)는 워터랜드 시의원 및 선출직 부시장 출신이고 보건복지담당 정무장관인 폴 블로 우 흐스(54)도 아펠 도른 시의원 및 선출직 행정관 출신이다. 이렇듯 풀뿌리 출신 각료가 즐비한 네덜란드 정부가 예산·자원배분에서 중앙과 지방 간 특별한 차별이 없는 건 당연하다. 뤼터 1기 내각은 20명 중 10명이 지방의원 출신이었고, 2기는 12명이 지방의원 출신이었다. 

한국은 어떤가? 1995년 완전한 지방자치 부활 이후 각 정부별 첫 내각에 임명된 각료에는 지방의원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을 찾기조차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전 서울시장)와 김두관 행자부장관(전 남해군수), 이명박 정부의 이명박 대통령(전 서울시장), 박근혜 정부의 유정복 안행부장관(전 김포시장),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국무총리(전 전남지사)와 김은경 환경부장관(전 서울시의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총 94명 국무위원 가운데 6명이므로 겨우 6.4%이다.

지방분권은 지방재정 또는 지방사무 이양이 아니라 지방에서 자라난 풀뿌리 정치인들을 중앙에서 발탁해 그들에게 예산 배분권을 부여하는 일이 우선이다. 눈에 보이는 데이터가 모든 진실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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