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66] 햄버거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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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석규 칼럼니스트
입력 2017-10-11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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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소련 붕괴 1년 전 모스크바 방문

[사진 = 바실리 성당(붉은 광장)]

공산체제가 무너지기 1년 전 소련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고르바초프가 뻬레스트로이까(Перестройка:개혁)와 글라스노스찌Гласностъ:개방,공개)를 앞세워 개혁과 개방의 바람을 거세게 일으키고 있을 때였다. 공산주의 국가로서는 최초로 인민대표자 회의, 국회의원을 처음으로 주민 직선을 통해 뽑는 때에 맞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인 소련의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모스크바에 들어갔다. 당시는 KBS 기자 신분이었다.

▶ 1Km 넘는 긴 줄 만든 햄버거

[사진 = 맥도널드 가게]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공산체제 국가에 대한 관념을 깨뜨릴만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끌만한 특이한 광경을 모스크바 시내 한가운데서 목격했다. 모스크바 시민들이 거의 1Km가 넘어 보이는 긴 줄을 만들고 있는 장면이 그 것이었다. 줄서기가 습관화돼 있는 러시아인들이라고는 하지만 그처럼 긴 줄을 만들고 있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오랜 시간동안 긴 줄을 서서 기다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바로 맥도널드의 햄버거였다.

▶ 자본주의 입맛 길들이기 투자

[사진 = 맥도널드 햄버거]

개방의 바람을 타고 모스크바로 진출한 미국의 맥도널드사가 러시아인들에게 햄버거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것도 소련 화폐인 루불화를 받고 싼값에 공급하고 있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다 태환성이 거의 없어 당시 국제적으로는 휴지조각이나 진배없이 취급되던 소련의 화폐 루불화를 받고 맥도널드사(社)는 엄청난 양의 햄버거를 소련에 쏟아 붓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회주의 종주국에 자본주의 입맛을 길들이기 위해 미국 기업이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진 = 붉은 광장 앞 레닌 묘]

레닌의 동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본주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 당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소련에 자본주의 입맛을 길들이는 데 앞장서 당장은 아무런 이득도 없이 햄버거를 쏟아 붓고 있는 맥도널드 회사는 어떤 미국의 정치인이나 기업인보다 훌륭한 애국자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사진 =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음료]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햄버거나 코카콜라 같은 자본주의 상징적인 식품을 무기로 삼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맥도널드의 햄버거도 러시아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시장 경제체제로 바꾸는 데 보이지 않는 큰 할을 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 타타르(몽골)스테이크가 햄버거의 기원
몽골의 얘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웬 햄버거 얘기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소련이 ‘제국주의’의 상징물로 여겼던 그 햄버거는 러시아에서 흘러나간 타타르 스테이크가 오랜 세월 후에 햄버거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러시아로 건너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 = 말안장]

타타르란 러시아를 240년간 지배했던 몽골인들을 가리킨다. 러시아를 지배했던 타타르족이 즐겨 먹던 요리로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것이 있었다. 기마 민족인 몽골인들이 날고기를 말안장 아래 깔고 다니면서 부드럽게 만든 다음 소금이나 야채를 곁들여 먹었다. 썰어서 다진 고기는 먹기도 좋고 말이 뛸 때마다 그 충격으로 고기가 다져져 부드러워지고 말의 체온으로 숙성까지 가능했다. 러시아에서는 지금의 햄버그스테이크와 비슷한 이 고기 요리를 ‘스테이크 타르타레’(steak tartare)라고 불렀는데 이는 ‘몽골 스테이크’, 즉 타타르 스테이크라는 뜻이다.
이것은 쇠고기를 날로 먹는 우리나라의 육회와 비슷해서 일부학자들은 육회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로 전래된 타타르 스테이크에서 출발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햄버거로

[사진 = 스파스까야 탑(脫몽골 지배 기념탑)]

13세기 영국의 왕 헨리 3세의 교서로 한자동맹이 결성돼 발트해 연안을 중심으로 북해상권이 형성되면서 함부르크가 북해상권의 주요 항구가 됐다. 이후 러시아를 지배하게 된 타타르족이 만들어 먹었던 타타르 스테이크가 상인들에 의해 함부르크로 유입됐다. 유럽 사람들은 생고기를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타타르 스테이크를 불 위에다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었다.

그 것을 함부르크 스테이크, 또는 독일식 스테이크(German Steak) 라고 불렀다. 함부르크에서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간 이 요리는 함부르크에서 왔다고 해서 햄버거 스테이크로 불렀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으로 들어가서 이름도 줄어들고 만드는 방법과 맛도 달라져서 오늘의 햄버거가 됐다는 얘기다. 햄버거에 들어가는 다진 고기를 패티(Patty)라고 부른다.
 

[사진 = 햄버거 가게 안내판]

영국을 비롯한 일부국가에서는 패티 자체를 버거(burg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패티에 야채 등을 곁들린 뒤 양쪽에 빵으로 싼 것이 바로 맥도널드가 소련에 뿌렸던 지금의 햄버거다. 이 햄버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빵 사이에 패티 등을 채운 햄버거(Hamburger)라는 이름으로 선을 보임으로써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 몽골 지배가 러시아에 끼친 큰 영향

[사진 = 유목민 말몰이]

몽골인들이 먹던 한 음식이 러시아를 거쳐 나가 지금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 가운데 하나로 변해서 다시 러시아로 돌아 들어온 것은 타타르의 러시아 지배가 빚어 낸 흥미 있는 작은 얘기 거리로 역사의 아이러니까지 느끼게 한다.

▶ 타타르 지배가 미친 영향

[사진 = 크렘닌 황금 첨탑]

햄버거는 하나의 얘기 거리에 불과할지는 모르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몽골의 러시아 지배는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돌려놓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이 틀림없다. 지금은 세계적인 도시가 된 모스크바의 성장도 몽골의 러시아 지배와 무관하지 않다. 또 그때부터 현재까지 670여 년 동안 몽골과 러시아의 관계를 예사롭지 않게 형성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20세기 세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로 갈라놓으면서 냉전체제를 불러 온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의 발발 또한 몽골의 러시아 지배와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몽골의 러시아 정벌과 지배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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