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그래그래] 갈할살말줄먹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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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 북칼럼니스트·작가
입력 2017-09-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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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그래그래]

    [사진=최보기 북칼럼니스트, 작가]


갈할살말줄먹때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 나왔기에 아직 기억하는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삶의 기로마다 했던 선택을 달리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을 읊은 것이었다. 현직 서울대 모 교수께서 강의 중에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 울림이 큰 탓에 ‘인생교훈’으로 둔갑해 인터넷의 경향각지를 떠돌고 있다. 선택의 기로에서 다섯 가지 행동지침을 제시하는 ‘까’ 시리즈가 그것이다. 그 교수의 가르침을 포함해 살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현명한 삶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까’를 정리해 보겠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것이 좋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고 했다. 기막힌 시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필두로 수많은 ○○회와 업무상 모임, 경조사, 인간관계 관리를 위한 모임까지 365일 ‘갈 곳’투성이다. 돈과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 그때마다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하다 나간 자리에선 뭐 하나를 얻더라도 반드시 얻는 게 있었다. 생업의 경제적 실익을 얻는가 하면, 좋은 정보나 지식을 얻기도 한다. 심지어는 만난 이 또는 그의 가까운 지인이 편집장인 매체에 유료 칼럼이 열리기도 한다. 때문에 갈 수 있는 한 이런저런 모임에 가급적 안 빠지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 경우, 지나치게 ‘이익’의 관점에서만 선택하게 되면 “그 사람은 꼭 자기에게 돈 되는 모임만 쫓아 다니는 얍삽한 친구야”란 뒷담화를 듣게 된다. 어디 모임뿐이겠는가. 여행도, 등산도, 문병도 그렇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갔을 경우 ‘아이고,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란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는 것이 좋다.’ 크게 성공한 미국의 어느 기업인이 오래전 국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공 비결을 묻자 “행동(Action)이 나를 다음 할 일로 몰고 갔습니다”라고 답했다. 무릎을 쳤다. 곧바로 4년 동안 생각으로만 머물던 ‘저자와의 산정만찬’을 시작했다. 매월 마지막 주말에 저자와 독자를 인왕산에 초대해 둘레길을 걷다가 산상에서 강연을 듣는 ‘값진’ 프로그램이다. 이 일을 시작했더니 ‘최보기의 책보기’ 브랜드 가치가 훨씬 높아졌다. 저자를 초대해 독자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저자와의 막걸리 한 사발’ 등 다음으로 할 일들이 마구 느는데 할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다.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않는 것이 좋다.’ 살까 말까를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그 물건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럴 경우 돈이 무한정으로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지출을 늘리기보다 참고 넘어가는 것이 낭비를 막는 길이다.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쏜 살은 되돌릴 수 없듯 한 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충고든, 비난이든, 조언이든 ‘이 말을 저 친구에게 해? 말아?’ 할 때는 일단 하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이롭다. 조상들께서 ‘삼 부리를 조심하라’고 하셨을 때도 그 첫 부리가 ‘혓부리’ 아니던가.

‘줄까 말까 할 때는 주는 것이 좋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돈이든 물건이든 누군가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은 배려이자 베푸는 일이다. 적선(積善)이 팔자를 고친다고 했고, 죽으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고민 말고 많이 많이 주면서 살자.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이롭다.’ 먹을 것이 풍성한 선진국의 고민은 국민들의 과체중이다. 우리도 점점 과체중(비만)이 늘고 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고, 만국 장수촌의 공통점 또한 소식(小食)이다. 새벽이면 습관적으로 당기는 라면도, 술도, 담배도, 마약도 먹을까 말까 싶을 때는 참는 것이 보약이다.

‘때릴까 말까 할 때는 안 때려야 산다.’ ‘맞은 놈은 발 뻗고 자도 때린 놈은 발 뻗고 못 잔다’고 했다. 또 ‘어린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고 했다. 엊그제 전국적 충격을 줬던 여중생 집단 폭행의 주범은 소년범인데도 들끓는 국민 여론 때문에 성인 구치소에 구속됐다. 맞은 여학생도 정신적 충격이 오래가겠지만 때린 학생들은 ‘전과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감옥살이도 힘들지만 이제 감옥에서 나와 보면 안다. 폭력 전과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어렸을 때 어르신들께서 남을 때리지 말라며 하셨던 말씀이 ‘그러다 살 내리면 큰일 난다’였다. ‘단 한 대를 때리더라도 운수가 사나우면 맞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였는데 실제로 그런 일 또한 다반사다.

가정폭력도 그렇다. 대개 폭력을 예사롭게 행사하는 아이의 경우 대부분 폭력적 부모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은 대물림 되는 것이다. 내 자식이 학교폭력, 데이트폭력으로 전과자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가정폭력을 멈춰야 한다. 그건 부모로서 자식을 위한 당연한 의무다. 그리고 나이 오십이 넘으면 ‘욕도 하지 말라’ 했는데 여태 주먹을 휘두르고 산다면 유구무언, 참으로 가치 없는 인간이라 하겠다.

종합하겠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때릴까 말까 할 때는 때리지 마라.’ 서울대 교수께서 인용은 하되 실명은 밝히지 말라 해서 밝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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