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국회 보이콧'…'책임 정치' 전제 없는 무분별한 '당론 맹종' 불신 자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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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입력 2017-09-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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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당 일주일간 장외투쟁

  • 당론 안 따른 의원에 징계… 헌법 자유위임에 위배 지적

  • 정당정치 왜곡·불신 등 문제

  • 여당도 청와대 거수기 비판… 의회 정치 리더십 보여줘야

'당론'은 정당 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때때로 당론이 여야의 극단적인 이념 대립을 가열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 9일 국회 복귀를 결정하기까지 7일간 이어진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사태가 단적인 예다. 여당 일각에선 당론을 맹종하는 '패거리 정치'라는 비판을 제기하지만, 여당 역시 과거 야당 시절 정부·여당에 대항하고자 장외 투쟁을 일삼았다. 결국, 이는 국회의원 스스로 "당론이냐, 소신이냐"를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정당 지도부가 당을 의회민주주의 질서에 맞게 운영하고 있는지 두루 살펴봐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 국가·국민의 이익과 정당의 이익이 충돌할 때

헌법 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 헌법학자들은 이 조항을 '자유 위임'의 헌법적 근거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 조항이 '당론에 따르지 않을 자유'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헌법은 '국회의원의 정당 기속'을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들의 당론과 소신 사이에서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정당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적 집단이므로 당론이 있을 수 있다"면서 "(헌법 46조 2항에 따라) 당론에 반대할 자유도 있기 때문에 (소속 의원들이) 무조건 당론만 쫓아다니는 것은 '자유 위임'에 반한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정당 수뇌부가 결정한 당론에 따르지 않으면 차기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르기도 한다"며 "정당 정치가 왜곡되게 발달한 나라에선 자유 위임의 원칙이 사실상 침해된다"고 진단했다. 

​가령, 한국당은 자당 김현아 의원이 당론과 달리 '교차투표'를 하자 상임위원회 사·보임이라는 징계를 내렸는데 이는 헌법이 보장한 자유 위임에 반하기 때문에 일각에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각 정당은 당론을 정해 다른 정당과의 정책 경쟁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당론을 정하지 않고 의원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이 문제는 정당 지도부와 의원들 스스로 '헌법적 가치 수호'와 '정당 정치 실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문제는 정당 수뇌부가 사사건건 당리당략에 따라 당론을 정하고 세 결집을 유도, 이념 대결로 몰고가는 구태가 한국 정치에 만연하다는 점이다. 이는 정당 정치 불신·혐오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MBC사장 체포영장 발부 등에 항의하며 국회 보이콧 시위를 벌인 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 부터), 우원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2017.9.4 [연합뉴스]


◆ '신뢰받는 여당', '건강한 야당'은 '책임 정치 실현'에서

이번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은 "여당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저지하겠다"는 명분에서 시작됐다. 공영방송 지배 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당의 말 바꾸기 행태를 비난하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포함해 대부분의 의사일정을 거부, '장외투쟁'에 나선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의회 민주주의' 질서 안에서 야당으로서 '대안 당론'을 제시하고 여당과 협상하려고 노력하는 등 원내에서 책임 정치를 실현하는 게 '건강한 야당'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방송법의 경우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 때 발의해 국회에 계류된 상태이기 때문에 정기국회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과정과 노력이 선행되지 않은 장외 투쟁은 '반대를 위한 반대', '패거리 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전직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당론은 주요 안건에 대해서만 정해야 한다"면서 "한국당의 보이콧 사유가 MBC 사장 때문이라면 소관 상임위를 개최해 거기에서 논의하면 될 일이지 국회를 전면 보이콧하는 것은 의원들 개개인의 자율적 선택권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당 역시 '청와대 거수기'라는 야당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의회 정치에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드 반대'였던 당론이 "사드 배치는 불가피한 조치"로 후퇴했지만, 엄격한 당 기율 속 대선 전후로 사드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여당 의원조차 침묵하고 있다. 한 여당 의원은 "각 당에서 당론으로 결정할 사안을 리스트로 만들어 공유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당 지도부가 당론을 결정·운영하는 과정에서 당내 숙의 과정을 거치며 소속 의원들의 소신과 양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누가 봐도 공감대가 없는 한국당의 보이콧 결정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이 합리적인 의견을 내지도 않고 맹종한다면 그건 당파성이고 국회의원 자질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당론과 다른 자신의 소신과 양심을 당에 밝히고 당을 설득했고, 이후 정의당 당론은 송 후보자 '지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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