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8. 비겁卑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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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입력 2017-07-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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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교수]


전략(戰略)과 기술(技術)
나는 나 자신을 가만히 응시할 시간이 없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부터, 잠들기까지 나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변화무쌍한 마술 상자가 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다. 핸드폰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우주의 수많은 별들을 압도적으로 전시하고, 내가 알고 싶은 고대 이집트의 장례문헌 ‘사자의 서’에 적힌 성각문자 하나하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인문, 과학, 예술에 관한 석학들의 최근 성과를 담은 학술저널도, 내 손가락 움직임을 통해 내 눈에 시시각각 들어온다.
 
핸드폰에는 내가 읽고 감상하고 싶은 동서고금의 고전과 경전들, 그리고 그것을 해석한 학자들의 글도 숨어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유수 대학들은 쐐기문자로 기록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헌들을 디지털 작업을 통해 모두 인터넷에 올려놓았다. 지금부터 5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우룩 신전에서 발견된 물물교환 영수증이나 ‘길가메시 서사시’가 적힌 수메르어 토판문서들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만일 아시리아 제국의 아슈르바니팔 왕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류 최초의 도서관인 ‘니네베’(오늘날 이라크 모술) 도서관을 건설해 모든 쐐기문자 토판문서를 수집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정보에서 내가 선별해, 내가 열망하는 목표를 위한 도구로 삼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이 정보를 가름해 선택하고, 인식가능하고 아름답게 만들 장본인은 바로 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기술을 ‘테크네’(techne)라고 불렀다. 테크네란 서로 상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정보들을 의미 있는 단위로 배열하는 행위다. 이 배열을 우리는 '전략'(戰略)이라고 부른다. 전략은 최적화된 정보의 나열이다.

테크네의 또 다른 의미는 ‘이 정보들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위해 일관된 전략으로 묶는 행위’다. 테크네의 어근인 ‘테크’(tech-)의 기본적 의미는 ‘이질적인 것을 묶다’이다. 우리는 이 묶는 행위를 '기술'(技術)이라 부른다. 테크네란 우주와 자연 안에 존재하는 사물과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남들이 보기엔 상관 없어 보이는 여러 조항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연결하는 창의력이다.

용기(勇氣)
한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유한한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의미를 주는 도구가 있다. 자신의 유일무이한 삶을 위한 전략과 기술이다. 인간은 모두 이 전략과 기술을 통해, 자기 스스로에게 감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인간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문학·예술작품들은 모두 이 영웅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그런 작품들은 영웅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일깨운다. 우리가 감동적인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것이 우리 심연에 존재하는 영웅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영웅은 자신만의 전략과 기술로 상대방과 대결해 항상 승리를 거둔다. 우리는 이 영웅들의 승리방식을 ‘용기’라고 부른다.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다윗이 팔레스타인의 최고 장수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용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들은 골리앗의 용모를 보고 겁에 질려, 자기 스스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해 위축됐다. 오직 홍안의 소년 다윗만이 골리앗과 결투를 벌여 승리할 수 있었다. 그에겐 몸집이 거대해 움직임이 비교적 아둔한 골리앗을 이길 전략이 있었다. 목동인 다윗은 양떼를 공격하는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 평상시 사용했던 물맷돌을 사용한다. 다윗은 이 전략을 실천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골리앗의 이마를 물맷돌로 정확하게 맞혔다. 다윗의 용기는 전략과 기술에서 나오는 당연한 카리스마다.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작가 엘리 위젤. 그는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인 행위는 비겁이고 인류의 최악"이라고 정의한다. [사진 = 엘리 위젤]
 

비겁(卑怯)
우리는 자기 인생을 위한 최적의 삶을 위한 전략도 없고 기술도 없는 자를 '겁쟁이'라고 부른다. 겁쟁이는 전쟁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겁쟁이는 적을 만난 적도 없는데, 미리 적에 대한 공포심으로 도망친다.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자신보다 힘이 약한 자들을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도 겁쟁이다. 자신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타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히틀러나 9·11사건 주도자인 오마사 빈라덴은 대표적인 겁쟁이들이다.
 
14세기 초 ‘신곡’을 써 중세를 끝내고 르네상스시대를 연 인물이 있다. 단테다. 그에게 비겁은 최악의 범죄다. 신곡은 지옥(34편), 연옥(33편) 그리고 천국(33편) 등으로 구성된 100편의 시다. 단테는 지하세계를 이미 여행했던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으로 내려간다. 그들은 마침내 지옥으로 들어가는 성문에 도착했다. 성문에는 다음과 같은 팻말이 붙어 있다. “나를 통해, 당신은 슬픔의 도시로 들어갑니다. 나를 통해, 당신은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갑니다. 나를 통해 당신은 길을 잃은 자들에게로 갑니다.”(지옥 제3편 1~3행)
 
지옥으로 들어갈 참인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지옥도 거부한 사람들의 처참한 울음소리를 듣는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에게 묻는다. “스승님, 내가 듣는 이 신음 소리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고통 속에서 울부짖습니까?” 베르길리우스는 답한다. “이 불쌍한 사람들은 불명예스럽지도 않고 칭찬받지도 않는 미지근한 불쌍한 영혼들입니다.”(지옥 제3편 34~36행) 이들은 자신의 상태를 유지하는 안정만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일을 시도하지도 않고 나쁜 일을 도모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주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모르는 폐품들이다. 이들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자들이다. 단테는 이들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영혼으로 묘사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죽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상에서 "살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들의 행위를 이탈리아어로 '윌타'(vilta)라고 명명했다. 윌타는 축자적으로 ‘소심함’이다. 그는 너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임무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설령 안다 할지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단테는 비겁한 자들을 지옥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최악의 인간으로 묘사한다.
 
나치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작가 엘리 위젤(1928~2016)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적인 행위는 비겁이고 인류의 최악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인간이 고통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할 때마다, 그런 고통과 창피를 당하는 장소에서 항상 침묵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압제자를 돕는 것이지 피해자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침묵은 괴롭히는 주동자를 독려합니다.” 위젤은 가공할 만한 역사적 사건과 폭력 앞에서 아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을 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런 비겁한 자들의 머리에는 ‘자기이익’이라는 신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는 비겁
우리는 끊임 없이 우리의 정신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정보 안에서 자신이 익사하는 줄도 모르고 하루를 연명한다. 마치 바퀴벌레가 자신이 발견한 설탕 조각 하나에 탐닉하듯이, 외부의 자극에 취약해 쉽게 반응한다. 비겁은 무시무시한 대상 앞에서 도망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비겁은 자신의 모습을 매일 직시하지 않는 습관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출 거울을 소유하지 않고, 끊임없이 습관적으로 타인의 이미지에 탐닉한다.

비겁은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위대한 자신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다. 이런 자신을 상상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가 하는 행위란 다른 사람을 흉내내고 훔쳐보고 부러워하는 일이다. 미국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부러움은 무식이고 흉내를 내는 것은 자살행위다’고 외치지 않았는가! 비겁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전략을 짜지 못하는 상태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엮어내는 기술의 부재다.

나는 비겁한 자인가, 혹은 용기 있는 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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