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사이트] 도덕적 해이와 역지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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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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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장

김윤영 서민금융진흥원장 [사진= 서민금융진흥원 제공]


지난주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모르는 두 남녀가 목청 높여 싸우는 모습을 봤다. 한 명은 아기 엄마였고, 또 다른 한 명은 반려견을 둔 남성이었다. 아이가 강아지 목줄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살펴보니 아기는 짧은 울음을 터뜨렸을 뿐 다친 곳 없이 멀쩡했고 목줄을 밟힌 강아지는 주인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기 엄마와 남성은 '강아지 목줄을 그렇게 길게 잡고 다니면 어떡하느냐', '아기를 제대로 돌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오랜 시간 싸움을 계속했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해 남성이 먼저 사과하고 아기 엄마가 그 사과를 받아줬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갈등이었다.

뉴스를 보다 보면 이와 비슷한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주차 갈등으로 이웃에게 흉기를 휘두르거나 층간소음을 낸 위층 이웃에게 역(逆)층간소음을 유발하기 위해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내가 받은 피해만 민감할 뿐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보니 발생하는 일들이다. 아기 엄마, 남성, 이웃이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易地思之)' 차원에서 한 번이라도 헤아려 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입장에서도 이 같은 역지사지 태도는 절실하다. 서민금융진흥원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빚에 시달리며 당장 생계를 잇기 어려울 정도로 막막한 상태가 많다. 이에 서민금융진흥원의 자회사인 국민행복기금에서는 과다한 부채를 지고 이를 갚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채무를 감면하고 상환기간을 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 즉 빚을 갚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국민행복기금 출범 후 채무를 감면받은 57만명의 부채는 평균 1000만원이고, 평균 연체기간은 7년 3개월이었다. 이 중에는 고령의 연세에도 감면 후 성실하게 빚을 갚아나가는 이들도 있다.

만약 도덕적 해이라는 굴레를 씌워 채무조정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57만명의 서민들은 경제활동에 복귀하지 못한 채 평생 금융채무 불이행자라는 낙인 아래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은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한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하게 되는 과정에는 개인의 도덕성 외에도 경기 상황과 실업, 건강 악화, 재난 등 개인 의지와 상관없는 무수히 많은 외부 요소들이 개입한다. 연체와 신용 등 빚과 관련된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다.

누군가의 고통을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치환(置換)해보자. 이를 통해 우리 모두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기반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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