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주말] 소련·중국서 36년간 공산주의에 맞선 대만 외교관… 회고록 '그래도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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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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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학고방]


아주차이나 박은주 기자 = ▲ 그래도 살아야 했다(원제: 悲慘回憶) = 소련에서 5년, 중국에서 31년, 총 36년간 공산주의에 맞서 가족과 생이별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견뎌낸 생(生)의 기록.

책은 국민당 중화민국 외교관으로 1937년 중·일전쟁 직전부터 조선이 해방되는 1945년까지 조선에서 근무했던 왕용진(王永晉)이란 인물이 소련과 중국 대륙에서 수용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 회고록이다. 

‘비참한 기억(悲慘回憶)’이란 제목의 원고는 1945년 소련으로 끌려갈 당시 복중에 있던 막내아들 왕칭더(王淸德)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왕칭더의 지인인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송승석 교수는 우연한 술자리를 통해 이 원고의 존재를 알게 됐다. 연구자로서 자료의 가치를 알아본 송 교수와 아버지의 숙원을 풀고 싶었던 왕칭더는 합심해서 원고를 세상에 내보이기로 했다. 

왕용진은 1905년 중국 산동(山東)성 룽청(容城)현에서 태어나 1932년부터 중화민국 난징(南京) 국민정부 외교부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조선에 부임한 것은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7년이다. 이후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원산 영사관을 역임했다.

1945년 해방 이후, 왕용진은 소련군이 권유한 중국 공산당 참여를 거절해 결국 하바롭스크 전범수용소로 압송된다. 그는 소련에서 5년 간의 수용생활을 하다가,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에 인계돼 7년 동안 노동교화를 받는다.

1957년 석방돼 귀향했지만, 이듬해 대만에 갈 목적으로 한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재수감된다. 1977년 국민당전범에 대한 중국의 특사조치로 석방될 때까지 수형생활을 하면서 대약진(大躍進),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등 굵직한 시대의 사건들을 경험한다.

그는 1980년 그토록 갈망하던 대만으로 돌아왔지만 대만 국민당정부의 무관심과 홀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자식들이 있는 한국으로 귀환해 생을 마감한다. 

왕용진은 이처럼 한 편의 영화같은 자신의 운명을 기록으로 남겼다. ​공산주의에 대한 거부감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던 그는 필연적으로 물리적 고향인 중국대륙의 공산주의를 등지고 이념을 따라 중화민국(대만)을 택했다. 

그러나 외교부에 근무하던 왕용진은 일제 식민 시절 매국노란 멍에를 뒤집어쓴 채 공직생활을 하고, 소련에서는 수감자로 지내면서 스탈린의 참혹한 공산주의를 경험했다.

또 중국으로 돌아와서는 최하층 서민으로, 사상 개조를 받는 수감자로 살면서 그 시대의 공산주의를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다. 어렵사리 돌아간 조국의 품에선 홀대를 받다가 결국 타향인 한국으로 돌아와 삶의 마침표를 찍는 기묘한 운명을 산다. 

역자인 송 교수는 물리적 고향인 중국을 등지고 이념적 정권이 소재한 대만에서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왕용진이 그토록 바라던 자유는 이념이나 국가 따위가 아닌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곳에 있었던게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 회고록은 저자의 조선 근무기간을 포함해 이전과 이후에 걸친 굴곡진 개인사는 물론, 식민‧분열‧냉전 등 격동의 동아시아 현대사를 일관되게 좇고 있는 일종의 역사기술이기도 하다.

일본이 중국대륙침략을 본격화하는 중에 자행했던 각종 역사적 사건들, 소련과 중국의 공산화 과정 등이 일반 민초들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다. 또 청나라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 유일 황제 푸이(溥儀)와의 직접적 대면과 대화에 기초해 봉건왕조의 몰락 과정과 그 필연성에 대한 단면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중국 성립 과정에서 중국인들이 겪어야 했던 정치적 암흑의 상흔들이 저자의 눈과 귀를 통해 생생한 화면으로 재구성된다. 개인의 자서전 성격을 넘어 역사적 의미가 있는 서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왕용진(王永晉) 지음/ 송승석 옮김/ 학고방/ 409쪽=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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