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배기’ 취미로…‘만만디’ 이지현 “상금왕? 불가능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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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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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3년 차 이지현이 28일 경기도 이천 사우스스프링스 골프장에서 막을 내린 KLPGA 투어 E1 채리티오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KLPGA 제공]

아주경제 서민교 기자(이천) = “우리 가족도 골프 한 번 해볼까?”

이지현(21)이 열 살 때 일이다. 1년에 두세 차례 가족여행으로 해외 리조트를 갔다. 그곳에 있던 골프장에서 외국인 가족이 다정하게 골프를 즐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지현의 어머니는 “가족이 함께 골프 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며 여행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온 가족이 골프채를 잡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는 취미에 그쳤지만, 이지현은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이 한마디에 취미로 골프에 입문한 열 살배기 소녀가 11년 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E1 채리티오픈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무명의 선수였던 이지현이 스타 탄생을 예고한 순간이었다.

이지현은 28일 경기도 이천 사우스스프링스 골프장에서 열린 E1 채리티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까지 우승의 향방을 알 수 없는 치열한 경쟁 끝에 거둔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생애 첫 우승. 벅찬 감격에 떨릴 법도 하다. 그런데 우승 뒤 만난 이지현은 덤덤하고 차분했다. “우승했는데 우승한 것같지 않다. 마지막 우승 퍼트를 할 때도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동료들이 물을 뿌리고 인터뷰를 하니까 우승한 것이 좀 실감 났다.” 우승 소감부터 여유가 느껴진다.

이지현은 2주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2015년 KLPGA 정규투어에 나서 17개 대회에 출전해 한 번도 톱10에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지난해에도 네 차례 톱10 진입에 성공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175㎝의 탁월한 체격조건에도 장점을 살리지 못한 탓이 컸다. 좌우로 들쭉날쭉한 드라이버가 문제였다. 장타력을 갖추고도 자신 있게 스윙을 할 수 없었다. 티샷부터 틀어지니 다음 샷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올해 달라진 건 드라이버의 정확도다. 티샷이 빗나가지 않으면서 장타력도 살아났고 자신감도 얻었다. 이후 샷들도 힘이 붙었다. 지난 14일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더니 2주 만에 우승까지 삼켰다.

든든한 코치 덕도 봤다. 올해부터 레슨 코치로 새 출발한 허석호(44)가 이지현의 지도를 맡은 뒤 기량이 급성장했다. 이지현은 “오늘 경기 전에도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긴장하지 않고 편하게 칠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번 대회 우승과 함께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었다. 이지현은 “나도 드라이버만 똑바로 치면 우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샷이 잡히니까 아이언샷도 잘 맞더라”며 “5월 안에 좋아하는 코스가 많아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챔피언조도 한 번 경험해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긴장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지현의 올해 목표는 5월 이내 첫 승이었다. 1차 목표는 이미 달성했다. 아직 이후 그림은 스케치를 해놓은 것이 없다고 했지만, 마음에 품은 목표는 당찼다. 이지현은 “투어가 목표였고, 첫 승이 목표였다. 그 다음은 경험을 쌓고 미국 진출을 하고··· 거창한 목표는 많다”면서도 “결국 내 인생이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골프를 치는 것이다. 재밌고 행복하게 투어 생활을 하는 것이 더 큰 목표”라며 빙긋이 웃었다.

이지현은 중학교 때까지 학업과 골프를 병행하며 연습량이 부족했다. 본격적으로 골프만 집중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다. 그만큼 가능성도 많다. 이지현은 약간 이른 올해 상금왕에 대한 깜짝 질문에도 “부족한 부분 계속 보완하면 불가능한 건 없지 않나요? 저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골프가 뭐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여유 하나는 ‘만만디(慢慢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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