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하이커우(海口), 독특한 역사의 정취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7-03-24 16:4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펑샤오강(馮小剛) 영화사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치러우 옛 거리[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


인민화보 천커(陳克) 기자 =끝없이 펼쳐진 중국 남해의 푸른 바다 위에 반짝이는 진주가 있다. 바로 아름다운 섬 하이난다오(海南島)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하이난다오는 중국 유일의 열대 섬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년 전 화산 폭발과 지질운동으로 대륙과 분리됐고, 우즈(五指)산을 중심으로 가운데는 융기되고 주위는 낮고 평평한 지형이 형성돼 다채로운 모습을 갖게 됐다. 중간에 우뚝 솟은 우즈산은 열대숲이 빽빽하고 사계절 늘 푸르다. 산이 물을 결정한다고, 산의 높은 봉우리와 언덕이 연평균 2000mm의 강수량을 수많은 계곡과 산골짜기로 모아 하천을 이루고 양 옆의 전원 마을을 풍요롭게 한다. 남쪽에 위치한 톈야하이자오(天涯海角)풍경지구는 야자수와 바다가 어우러지고 해변의 햇볕이 좋아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하이난성의 성도(省都)인 하이커우는 경치가 아름다운 것은 물론 역사가 깊고 문화가 풍부하다. 하이커우에서 바닷바람과 치러우(騎樓) 옛 거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항구도시의 변천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하이난 미펀(米粉, 쌀국수)을 먹고 ‘라오바차(老爸茶)’를 마셔봐야 하이커우만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오전 8시, 하이커우 창디(長堤)로의 시계탑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리면 도로의 행인과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시가 깨어난다.
중국에서 가장 젊은 성도인 하이커우는 천년 역사를 지닌 도시다. 역사의 시계를 되감으면 이곳은 충저우(瓊州)해협 남쪽의 진흙과 모래가 부딪쳐 생긴 모래사장이고 중원에서 남하한 사람들이 하이난으로 진입하는 나루터였다. 북송시대에 개항해 명나라 때 소성(所城, 고대 도시명)이 건설됐다. 청나라 후기까지도 하이커우는 충산(瓊山)현(옛 지명, 지금의 하이커우시 면적을 커버한다) 아래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1858년, 하이커우는 열강에 개방된 통상항구 중 하나가 됐다. 그때부터 해상 국제무역의 중간지점으로 무역 왕래가 활발해졌고 하이난 사람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통로가 됐다. 당시 동남아 국가는 대부분 서방의 식민지여서 대규모 농장 개간과 채광으로 많은 노동자가 필요했다. 비교적 높은 급여와 지리적인 근접성 때문에 하이난 사람들이 하이커우로 몰려들었고 이곳에서 출발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 갑자기 동남아 진출 붐이 일었다. 관련 통계를 보면, 1876-1898년 23년 동안 여객선을 통해 동남아시아로 간 하이난 사람은 24만4700명으로 연평균 1만여 명 꼴이었다. 갑오전쟁 이후 2만4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바다를 건넌 하이난 사람들을 충차오(瓊僑)라고 부르고 그들은 타국에서 뿌리를 내렸다.
20세기 초 하이커우는 다양한 사람에게 문을 연 개방적인 도시였다. 특히 1926년 하이커우시가 설립된 이후 외국으로 떠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어 충차오들이 하이커우에 속속 투자했다. 그들은 커피, 라오바차 등 동남아시아 풍습뿐 아니라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치러우를 들여왔다. 치러우는 건물이 길 위를 가로질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2-4층 벽돌 목제 구조로 되어 있어 주상 복합의 두 가지 수요를 만족시킨다. 처마 밑에 높고 넓은 복도가 있어 햇빛과 비를 가려주어 고온다습한 하이커우 여름 날씨에 적합하다. 때문에 1920년대에 하이커우의 창디로, 중산(中山)로, 더성사(得勝沙), 보아이(博愛)로 등에 몇 년 사이에 800여 개의 치러우가 건설됐다. 덕분에 치러우로 상인들이 모여들어 하이커우의 상업 중심지가 됐다. 현지인이 난양(南洋)가라고 부르는 것은 하이커우 사람들의 옛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치러우 옛 거리, 옛 도시의 기억을 깨우다
올해 63세인 황스파(黃世發) 씨는 하이커우 토박이다. 그는 “서서히 날이 밝으면 어선이 하이뎬시(海甸溪)에서 항구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광주리를 들고 보아이로의 동문시장에서 신선한 생선을 사와 가족에게 먹였다”고 어린시절을 회상했다. 황스파 씨는 치러우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고 평생 치러우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그는 현재 하이커우 난양치러우연구회 회장으로 치러우 연구와 보호에 힘쓰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번화했던 치러우 옛 거리는 시대의 변화와 인구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 점차 쇠퇴하고 파괴됐으며 사라지기도 했다. 2008년 3월 하이커우시 정부는 치러우 옛 거리 복원 및 개조 정책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 또한 황스파 씨와 동료들의 주요 업무다. “치러우 옛 거리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많은 자료를 연구하고 많은 사람을 방문했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책임감있는 자세로 역사 유물을 잘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예를 들어 조각의 경우, 우리는 옛 것과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벽에 수작업으로 조각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노력한 끝에 2013년 중산로 치러우 역사문화거리가 대외에 공식 개방됐다.
치러우 옛 거리를 걸으면 과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유럽식 기둥, 지붕, 조각이 새겨진 문과 창문, 블라인드가 동남아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러면서도 세부적인 곳은 전통 회소(灰塑)와 벽돌 조각 장식을 하여 중국 전통의 미와 하이난 현지 특징을 잘 드러냈다.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호 앞에서 노인들이 햇빛을 쬐며 한가롭게 신문을 넘기고, 머리에 삿갓 같은 모자를 쓰고 멜대를 멘 노점상이 신선한 과일을 팔고 있다. 길게 뻗은 복도에는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거닐며 쇼핑을 하고, 소매를 걷고 걸어가는 젊은이들이 때때로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풍경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복도 속에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모습이 100년 전과 똑같다.
 

1929년 건설이 시작된 벽들 시계탑은 하이커우의 랜드마크다. 100년 동안 시계탑의 외관과 위치가 몇 번 변했고, 1987년 지금 위치에 재건됐다. [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예쯔판(椰子飯)[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하이난 4대 미펀중 하나인 하이난옌펀[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예쯔궈빙(椰子果冰)[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칭량부(清涼補)[사진=타마코 사도(Tamako Sado) 제공]


맛있는 음식, 하이커우의 숨결이 느껴진다
한 지역의 특징은 종종 소박한 샤오츠(小吃, 간단한 음식)로 나타난다. 하이난의 샤오츠 중에서 미펀을 빼놓을 수 없다. 하이난 사람들은 국수를 좋아해 대도시든 작은 도시든 국수가게가 매우 많다. 유명한 것만 따져도 하이난옌펀(海南腌粉), 바오뤄펀(抱羅粉), 링수이쏸펀(陵水酸粉), 허우안펀(後安粉) 등 십여 가지가 있다. 하이커우 사람들은 대부분 하이난옌펀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희고 부드러운 국수 위에 참기름을 두르고 고기와 콩나물, 죽순, 땅콩, 다진 파와 고수 등을 얹으면 맛이 깊고 식감이 부드럽다. 학생이든 직장이든, 한가한 노인이든 맛에 이끌려 새벽같이 먹으러 온다.
나른한 낮잠 시간이 지나자 하이커우 옛 지역 뒷골목에 있는 간소한 상점의 오래된 탁자에 몇몇 사람이 둘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하이커우에서 가장 독특한 문화인 ‘라오바차’를 마시는 풍경이다. ‘라오바차’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여 차를 마신다는 뜻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돌아온 화교들이 가져온 풍습이었지만 지금은 하이커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손님들은 커피와 간식을 시켜놓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다 목이 마르면 커피나 차를 한 모금 마시거나 천천히 담배를 피우고, 간식을 먹으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렇게 저녁까지 한나절 동안 이야기를 나눈다. 생활 리듬이 이렇게 느긋하다 보니 그들에겐 스트레스가 전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 그저 삶에서 마음의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뿐이다.
주말이 되면 하이커우 사람들은 완뤼위안(萬綠園)으로 가족나들이를 즐겨 간다. 하이커우 최대 연해 열대정원인 완뤼위안은 야자수 위주의 열대 및 아열대 식물 만 그루가 있다. 쾌적한 환경 덕분에 특수한 계층이 많이 찾는다. 그들은 바로 겨울철 북방에서 남방으로 와서 겨울을 보내는 ‘철새 노인’이다. 라오리(老李, 69세) 씨 부부는 완뤼위안에서 방금 자전거를 10km 탔다. 부부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10년을 보냈고 홍콩에서 25년을 살았다. 작년에 퇴직한 부부는 하이커우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다. “하이커우는 공기도 좋고 홍콩처럼 복잡하지도 않아 살기가 정말 좋다.” 라오리 씨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던 길을 갔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아주NM&C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