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내조'로 65년을 함께 해온 손명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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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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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맹순이' 애처가 김영삼 전 대통령, "고마웠소, 사랑하오"

  • 슬하에 2남3녀…차남 김현철씨 대통령 재임시절 '소통령'으로 군림…한보비리로 구속돼

[사진=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제공]



아주경제 주진·이수경 기자 =“그동안 참으로 고마웠소, 사랑하오. 이 두 마디 뿐 입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011년 회혼식 때 아내 손명순 여사의 볼에 입맞춤을 하며 건넨 말이다.

평생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서 남편 곁을 묵묵히 지키며 ‘조용한 내조’로 남편과 동지들을 살뜰히 보살핀 아내 손명순.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손명순 여사가 없었더라면 김 전 대통령의 성공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주인' 시절에도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나서기보다 한정된 역할에만 치중하는 '전통적 영부인'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김 전 대통령은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철학과 3학년이던 1951년에 당시 이화여대 약학과 3학년인 동갑내기 손 여사와 경남 마산 문창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손 여사의 집안은 마산에서 고무회사를 운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아내 손명순을 늘 ‘우리 맹순이(명순이)’이라고 불렀다. 아내가 ‘맹순이’이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그는 ‘맹순이를 맹순이로 불러야지, 뭐라고 부르느냐’며 짓궂게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남편의 말 속에는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그는 생전에 손 여사와의 결혼에 대해 “맹순이가 예쁘고 좋았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민주화를 이뤄낸 일과 손명순 여사를 내 아내로 맞이한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아내는 항상 남편인 저를 높여줬고, 자신을 낮췄다. 화를 잘 내는 저에게 항상 져줬고,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손 여사는 민주화투쟁으로 고난의 길을 걷는 남편을 위해 자신 만의 내조법을 만들었다. 가난을 참는 것.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것, 집에 찾아온 사람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 이 세가지를 꼭 지켰다.

야당 시절, 날마다 상도동 집을 찾는 민주화투쟁의 동지들인 상도동계 식구들과 기자들을 위해 날마다 쌀 한말씩 밥을 해서 상을 차렸다.

야당 정치인의 아내로 시작해 14대 대통령 영부인까지, 지난 65년을 함께 한 반려자는 22일 남편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 남편이 떠난 22일 아침 서거 소식을 듣고는 “안 추웠는데 춥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진=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제공]



김 전 대통령은 아내 손명순 여사와 슬하에 장녀 혜영(63), 차녀 혜정(61), 장남 은철(59), 차남 현철(56), 3녀 혜숙(54) 씨 등 2남 3녀를 뒀다.

장남 은철씨는 아버지 외모를 쏙 닮았지만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평생을 베일에 가려진 채 살아야 했다. 1982년 그의 결혼식에도 아버지는 가택 연금중이었기에 참석하지 못했다. 신군부가 특별히 김 전 대통령에게 장남의 결혼식 참석을 허용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나는 아버지 이전에 정치인"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아버지 없이 결혼식을 치른 은철씨는 이후 미국으로 떠나 평생을 해외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졌다. 몸이 많이 안좋은 것으로 알려진 은철씨는 아버지 빈소에도 잠깐 모습을 드러냈을 뿐 내내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차남인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현 고려대 연구교수)의 활동상이 외부에는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소(小)통령', 또는 김 전 대통령의 호인 '거산(巨山)'에 빗대 '소산(小山)'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권력을 행사한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러나 한보비리 사태에 연루되면서 임기 말 김 전 대통령의 레임덕을 사실상 앞당겼다는 지적도 있다.

현철 씨는 미국 유학 이후 쌍용증권에 근무하다 1987년 대선에 출마한 부친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14대 대선 당시에는 김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을 총괄하면서 당선에 기여했다.

문민정부 출범 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한보비리에 연루되면서 1997년 5월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대국민사과를 했다.

징역 2년을 선고받고 1999년 사면 복권된 후 정치적 재기를 노렸지만, 2004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또 한 번 구속됐다. 부친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꾸준히 시도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아직까지 여의도 입성은 하지 못했다.
 

[사진=김영삼 대통령 기록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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