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금융산업 육성은 선진국 도약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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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자유시장연구원장
입력 2022-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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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제에 시동 꺼진 '타다'. 핀테크 세계 2위로 승승장구 'Gr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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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때 동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칭송받으면서 동아시아 경제성장을 주도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은 1인당 소득 기준으로 볼 때 선진국에 안착한 싱가포르, 홍콩과 아직 선진국 초입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대만으로 분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홍콩은 중국에 편입되면서 고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반면 근년에 들어 반도체를 중심으로 약진하고 있는 대만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단연 으뜸을 달리고 있는 나라가 싱가포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1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싱가포르는 7만2795달러, 홍콩은 4만9727달러로 추정한 반면 한국은 3만4801달러, 대만은 3만3775달러로 추정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약진은 실로 눈부시다. 싱가포르 1인당 국민소득은 2004년에 홍콩을 추월하고 2010년에는 일본도 추월하며 동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크게 앞서고 있다. 가장 더디게 증가해 온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2003년에 대만을 앞서기 시작했으나 내년에는 다시 대만에 추월당할 것으로 국제통화기금은 전망하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이미 1%대에 진입해 앞으로 이러한 격차가 더욱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이 싱가포르의 눈부신 약진을 이끌어 왔나. 흔히 싱가포르와 한국을 비교할 때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이니까 하면서 깊이 있는 분석을 외면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것은 싱가포르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싱가포르는 언제나 전 세계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 스위스와 더불어 1~2위를 다투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스위스의 1인당 국민소득은 9만3720달러로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3위다. 룩셈부르크와 아일랜드가 워낙 소국인 점을 고려하면 스위스가 사실상 세계 1위인 셈이다. 스위스와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규제가 없고 법인세가 낮고 금융산업이 발전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암호화폐산업이 세계 최고로 발전해 크립토밸리로 불리는 스위스의 주크를 방문했을 때 주크시 당국은 법인세를 15%인 싱가포르보다 낮게 인하할 것이라는 귀띔도 해 주었다. 이 정도로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경쟁에 여념이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업 활동이 활발하니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득이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예를 하나 들면 싱가포르에 그랩(Grab)이라는 택시호출회사가 있다. 한국의 카카오나 타다 같은 회사다. 한국의 타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는데 한국은 타다금지법이 만들어져 타다가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한 반면 싱가포르의 그랩은 대단한 호황을 보이며 산하에 금융지주회사 그랩파이낸셜을 만들어 지급결제, 대출 등 여러 금융산업도 영위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KPMG는 중국 알리바바의 금융지주회사 앤트파이낸셜에 이어 세계 2위 핀테크 회사로 그랩을 올렸다. 한국은 갖은 규제로 사라지다시피 한 동종 산업이 규제가 없는 싱가포르에서는 자동차 호출 정도가 아니라 세계 2위 핀테크 회사로 성장하면서 수만 명의 고급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비약적인 소득 증가의 배경에는 이처럼 금융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금융산업은 대부분 싱가포르에 진출해 있다. 대부분 동아시아 본부급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세계 유수 은행 싱가포르 동아시아 본부에는 직원만 4만~5만명씩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 싱가포르는 명실공히 아시아 금융허브다. 이처럼 세계 유수 은행들이 싱가포르에 모여 있으니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대학원들의 분교가 싱가포르에 속속 진출해 있다. 세계 유수의 금융회사들과 경영대학원들이 밀집해 있으니 자연히 국제 콘퍼런스 전시행사가 많아지면서 마이스(MICE)산업과 관광산업도 발전해 있다. 이러한 산업의 특징은 고급 인력이 필요하고 따라서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산업이 발전한다는 점이다. 제조업 중심으로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서비스업 비중이 한국과 비슷하게 70% 내외 수준인데 싱가포르에는 금융, 교육, 마이스, 관광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중심인 데 반해 한국은 도소매, 음식, 숙박업 등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이 중심이다. 가장 큰 배경은 한국은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너무 과도해 고부가가치 산업인 금융산업과 연관 산업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데 있다.

영국 금융컨설팅회사 젠(Z/Yen)의 글로벌금융중심센터지수에서 2016년만 해도 세계 7위 수준이었던 서울의 글로벌금융센터 순위가 문재인 정부 들어 30위권으로 추락했다. 지난해에는 다소 상승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이다. 다보스포럼으로 유명한 세계경제포럼의 글로벌경쟁력보고서에서 한국의 금융산업 경쟁력을 대체로 비슷한 수준인 중하위권으로 평가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세계 50대 은행에 한국은 하나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총 6곳이 세계 100대 은행 순위에 랭크되었으나 대부분 그룹 단위로 60~90위권 수준이다. 주식시장 시가총액도 일본의 25%, 홍콩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차등의결권 불인정으로 근년 들어 쿠팡 등 많은 스타트업들이 미국 시장에 상장을 하는 추세다. 동아시아 금융허브를 주장해 왔지만 갖은 규제와 강성 노조로 인해 그나마 들어와 있던 외국 금융회사들마저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때 ‘10-10’ 정책이라고 해서 10년 안에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를 10%까지 올리겠다는 정책이 추진되었지만 여전히 5%대에 머물러 있다. 금융산업 종사가가 약 80만명 수준이므로 이 정책만 제대로 추진되었더라면 양질의 고급 일자리가 약 80만개는 창출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금융허브’ ‘10-10정책’ 등 좋은 정책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유지배구조에서부터 인허가 규제, 금융상품 규제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쌓인 규제가 금융을 질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 씨티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부나 예금보험공사,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이러니 정부 입김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관치금융을 넘어 정치금융이라는 말도 언론에 등장할 정도다. 그러니 금융의 생태계는 비정상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1997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가 발생해 168조원의 공적자금 투입과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를 양산하는 등 한국 경제에 천문학적인 충격을 몰고 왔다. 그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적되고 있지만 금융 면에서는 한국 금융의 금융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점이 지적되었다. 즉, 금융이 기업에 여신을 공여하는 과정에서 사전심사(screening)와 사후감시(monitoring)라는 금융 본연의 기본적인 중개기능이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고위험 부실여신이 과도하게 제공되고 이는 기업 부실과 금융 부실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옴으로써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재경원 금융정책국이 지목되면서 재경원이 해체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금융 본연의 기능인 금융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음으로써 금융산업 발전이 낙후됨은 물론 금융자원의 비효율적인 배분과 부실여신 누적으로 경제 전반의 발전에 저해 요인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구 재경부의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위원회의 금융감독업무를 통합해 확대 개편된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을 통할하는 정부 부처화되면서 무소불위의 금융권력을 행사하는 금융권부로 등장했다. 금융위기 시 한국 정부와 IMF 간 '의향서'에서 요구한 '운영상·재정상 자주성'이 확보된 '강력하고 독립된' 감독기능은 사실상 실종되고 신관치금융 논란이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심지어 정치금융의 논란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벤처기업에서 출발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창업 시절에 필요한 자금은 대부분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회사가 투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공한 벤처기업들을 나스닥에 상장하거나 대기업에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피인수합병시켜 모든 투자금을 회수하고도 남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 과정을 반복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벤처기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바, 이런 경우 정부가 하는 일은 그저 규제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회사가 발달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 수많은 금융 규제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엔젤투자자나 벤처캐피털회사에도 산업전문가가 많지 않아서 산업별 유망 벤처기업들을 잘 발굴해 내지 못해 과감한 투자를 하기 힘든 실정이다. 자연 정부의 자금 공급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며 안정성이 중요한 정부 자금은 대체로 업력이 3~4년 정도인 안정되고 무늬만 벤처에 투자하고 있다. 이런 정도로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벤처기업이 탄생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선진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비전을 정립하고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첫째, 제2홍콩인 '동아시아 국제금융지'를 육성해야 한다. 획기적인 규제 개혁과 국제금융특구 육성으로 홍콩 사태로 탈홍콩하는 국제금융회사들을 유치해 싱가포르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국가로 탈바꿈해야 한다. 둘째, 왜곡된 금융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관치금융·정치금융을 청산하고 금융산업 생태계 정상화로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관치금융·정치금융 청산을 위해 정부 조직을 개편해 금융감독체계를 정상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셋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플랫폼 혁명 시대 금융도 빅테크(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와 금융의 융합 시대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추세에 부응해 한국의 중층적인 금융 규제 혁파로 새로운 금융산업을 육성하면서 소비자 보호와 금융 안정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넷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가상자산, 디지털자산 시대에 부응해 디지털자산사업 발전과 투자자 보호 간에 균형을 도모하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이미 금년 초 상용화하기 시작한 중국의 디지털위안화 시대에 부응해 동아시아 지역통화가 디지털위안화에 의해 지배되지 않도록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선진화 없이는 한국 경제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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