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라졌던 먹거리들이 다시 매대와 메뉴판에 오르고 있다.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다시 팔아달라"고 요청한 제품을 기업들이 한정 판매나 재출시 형태로 되살리면서다. 익숙한 맛의 재출시는 소비자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매개체로, 기업에는 이미 검증된 인지도와 팬층을 활용해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오는 27일부터 볶음너구리 봉지면과 용기면을 한정 수량 재출시한다. 볶음너구리는 너구리 특유의 굵은 면발에 해물의 감칠맛과 매콤함을 더한 볶음면이다. 2017년 출시된 뒤 2024년 단종됐지만 판매 종료 이후 오히려 소비자 관심이 커진 제품이다.
AI 분석 기업 뉴엔AI에 따르면 볶음너구리 온라인 검색량은 2024년 약 6만3000건에서 올해 8월까지 약 10만건으로 늘었다. 소비자들이 수출용 제품 시식 후기나 기존 너구리를 활용한 조리법을 자발적으로 공유하면서 관심을 끌어낸 결과다. 최근 2년간 농심에 접수된 재출시 요청 제품 가운데 볶음너구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서울 성수동 안테나숍 '신라면 분식'에서도 수출용 볶음너구리가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재출시 제품은 기존 맛을 바탕으로 상품성을 일부 보완했다. 농심은 홍합과 오징어 등 해물 풍미와 매콤한 맛을 강화하고 용기면에는 전자레인지 조리법을 적용했다. 출시 전에는 농심몰에서 3000명 한정 사전 예약을 진행하며 실제 구매 수요를 먼저 확인했다.
롯데칠성음료는 2015년 단종한 캪틴큐를 11년 만에 재출시했다. 캪틴큐는 1980년 출시된 양주 브랜드로,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워 1980~1990년대 양주 대중화를 이끈 제품으로 꼽힌다. 출시 1년 만에 1000만병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단종 이후에도 캪틴큐는 영상 콘텐츠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꾸준히 언급됐다. 이에 롯데칠성음료는 뉴트로 소비문화와 가성비 위스키 수요 확산에 맞춰 캪틴큐를 다시 선보였다. 돌아온 캪틴큐는 정통 캐리비안 럼 원액을 사용한 제품으로, 버번 캐스크에서 1차 숙성한 뒤 PX 셰리 캐스크에서 추가 숙성해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살렸다. 디자인은 과거 캪틴큐의 병 모양과 짙은 녹색을 유지해 과거 감성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캪틴큐가 재출시 직후부터 흥행을 이어가자, 롯데칠성음료는 2차 물량 생산을 위한 원재료 수급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외식업계도 단종 메뉴를 다시 꺼내고 있다. 버거킹은 지난 6월 롱치킨버거와 불고기롱치킨버거를 기간 한정으로 재출시했다. 지난해 7월 단종된 이후 공식 홈페이지와 SNS에 재출시 요청이 이어진 데 따른 결정이다.
롱치킨버거는 길쭉한 치킨 패티와 번, 양상추, 마요네즈의 조합으로 오랜 기간 판매됐던 메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치즈와 마요네즈를 추가해 먹는 '롱치마' 레시피가 공유되며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버거킹은 재출시와 함께 최근의 '찍먹' 트렌드를 반영한 빅 딥 체다치즈 소스도 선보였다.
KFC도 시즌 한정 메뉴였던 닭껍질튀김을 다시 선보였다. 닭껍질튀김은 2019년 처음 출시된 뒤 짭짤한 감칠맛과 쫄깃하면서도 바삭한 식감으로 호응을 얻은 메뉴다. 판매 종료 이후에도 재출시 요청이 이어지자 KFC는 올가을 시즌 한정 메뉴로 다시 내놨다. 이번에는 중량을 기존 대비 2배로 늘리고, 기존 살사소스 대신 스파이시 마요를 함께 구성했다. 판매 기간은 다음 달 9일까지 28일간이다.
업계가 단종 제품을 다시 꺼내는 것은 재출시 제품이 가진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제품보다 소비자에게 설명하기 쉽고, 과거 구매 경험이나 온라인 언급량을 통해 기본 수요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SNS와 커뮤니티에서 제품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쌓이면 재출시 자체가 마케팅 소재가 되기도 한다.
다만 소비자 요청이 장기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재출시 초기에는 추억과 호기심이 구매를 이끌 수 있지만, 이후에는 현재 소비자의 입맛과 가격, 편의성, 구매 빈도를 공략하며 기존 제품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리온의 와클은 2021년 약 15년 만에 재출시돼 5주 만에 180만개가 팔렸지만, 2024년 다시 단종됐다. 이에 기업들은 한정 판매나 사전 예약을 통해 시장 반응을 먼저 살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단종 제품은 소비자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며 "다만 과거 인지도만으로는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맛과 품질, 편의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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