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같다" 불타고 약탈당한 파리…시위 격화에 2400명 체포

  • 생활비·기름값 불만에 55만~80만명 거리로…상점 약탈·시청 방화

  • 경찰 1000명 부상·이튿날도 충돌…마크롱 "분노와 수치심"

17일 프랑스 국기를 든 시위대 사진EPA·연합뉴스
17일 프랑스 국기를 든 시위대 [사진=EPA·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생활비와 기름값 상승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면서 수도 파리를 비롯한 주요 도시가 큰 혼란에 빠졌다. 상점 약탈과 차량 방화가 잇따른 가운데 약 2400명이 체포됐으며, 이튿날에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이 이어졌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시위 참가자는 프랑스 내무부 추산 55만명, 주요 노동조합인 노동총연맹(CGT) 추산 80만명에 달했다. 대부분은 평화적으로 행진했지만 일부 과격 집단이 경찰과 충돌하고 상점을 약탈하면서 피해가 커졌다.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소요 사태로 약 2400명이 체포됐으며, 경찰과 헌병 약 1000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부상자 가운데 7명은 중상인 것으로 집계됐다.

시위가 휩쓸고 지나간 파리 도심 곳곳에는 불에 탄 차량과 부서진 상점, 검게 그을린 바리케이드가 남았다. 중심부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명품 매장들의 쇼윈도가 파손됐고, 일부 상점은 물품을 약탈당했다. 레퓌블리크 광장 주변에서도 차량과 자전거 등에 불이 붙고 상점이 파손되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17일 시위 후 유리창 등이 파손된 프랑스 리옹의 한 매장 사진AFP
17일 시위 후 유리창 등이 파손된 프랑스 리옹의 한 매장 [사진=AFP

파리를 방문한 네덜란드 기업가 티예 더부르는 로이터에 "이곳은 마치 전쟁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로 인한 혼란 때문에 가족과 함께 머물던 호텔에서 대피해야 했다고 전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고등학생들의 움직임에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가세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됐다. 생활비와 유류비 상승, 공공서비스 악화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반정부 시위로 번진 것이다. 2018년 유류세 인상과 경제적 불평등에 반발하며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들도 일부 합류했다.

시위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도 발생했다. 남부 생테티엔에서는 17세 소년이 경찰의 진압용 수류탄에 오른손을 크게 다쳤고, 뮐루즈에서는 17세 소녀가 한쪽 눈을 잃었다고 현지 당국이 전했다. 파리에서는 시위 도중 심정지를 일으킨 참가자 1명이 숨졌다. 당국은 사망이 시위 과정의 충돌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지방 도시에서도 약탈과 방화가 잇따랐다. 남부 마르세유에서는 에르메스 매장 등이 약탈당했고, 보르도에서는 복면을 쓴 군중이 도지사 관저에 난입했다. 리옹에서는 도심 관광안내소가 불에 탔다.
프랑스 시위로 불탄 파리 시내의 자동차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시위로 불탄 파리 시내의 자동차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부 리모주에서는 19세기에 건립된 시청 건물이 방화로 크게 파손됐다. 화재로 시청 시계탑까지 무너지면서 지역 주민들의 충격이 커졌다.

프랑스 유통업체 까르푸는 전국 매장 50곳이 피해를 봤으며, 이 가운데 20곳에서 약탈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이 밝힌 피해 규모는 수천만 유로에 달한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의류 매장 쇼윈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한 의류 매장 쇼윈도 [사진= 로이터·연합뉴스]

폭력 사태는 18일에도 이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SNS를 통해 모인 수백 명이 집결하면서 경찰과 충돌했다. 일부 참가자가 경찰을 향해 돌과 병을 던졌고, 경찰은 최루가스와 섬광탄을 사용해 해산에 나섰다. 당국은 이날 추가로 42명을 체포했다. 광장 인근에서는 최소 5개 상점이 약탈당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폭력 사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오늘 밤 우리는 모두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며 정당한 요구를 제기한 평화적 시위 참가자들과 파괴·약탈에 가담한 사람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공건물과 상점 등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면 지방 당국이 일부 집회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야권 일각에서 요구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나 통행금지 등의 조치는 발표하지 않았다.
폭력시위 관련 대국민 연설하는 마크롱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폭력시위 관련 대국민 연설하는 마크롱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정부는 피해 상인에 대한 지원과 함께 경찰의 시위 대응 과정도 점검하기로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로랑 뉘네즈 내무장관에게 정보 수집과 사전 대응이 적절했는지 평가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의원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의원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약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은 마크롱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또한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를 이끄는 장뤼크 멜랑숑은 정부가 청소년과 시민들의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 사진AFP·연합뉴스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 [사진=AFP·연합뉴스]

폭력 사태의 책임을 두고는 입장이 엇갈린다. 프랑스 정부는 일부 극좌 세력과 범죄 집단이 폭력과 약탈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좌파 진영에서는 경찰의 강경 진압이 충돌을 악화시켰다고 비판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도 평화적인 시위 참가자들과 방화·약탈에 가담한 집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활비 상승과 교육 환경에 대한 불만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위가 이틀 연속 폭력 사태로 이어지면서 프랑스 정부의 대응과 향후 시위 확산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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