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한·미 정보 갈등, 자주외교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북극항로 시범운항 환영식에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전재수 부산시장과 입장하는 모습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부산에서 열린 북극항로 시범운항 환영식에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전재수 부산시장과 입장하는 모습. [사진=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의 “국가 간 관계에서 굴종적·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발언을 둘러싸고 파장이 일고 있다. 국가의 자주성과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 갈등이 반년 넘게 이어지며 양국 간 신뢰에 균열이 생기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발언이 적절했는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주외교와 동맹의 신뢰는 별개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의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갈등 해소와 신뢰 회복에 나서는 일이다.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정보 협력을 한·미 관계의 가장 어려운 현안으로 꼽았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월 북한 평북 구성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언급한 이후 불거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 직원의 비자 발급이 지연되고 한·미·일 대북 사이버 협력에서 국정원이 배제되는 등 파장도 현실화하고 있다. 단순한 외교적 신경전을 넘어 안보 협력 체계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우려를 가볍게 볼 수 없다.

대북 정보는 한국 안보의 핵심 자산이다. 미국의 정찰위성과 영상·신호 정보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데 필수적이다. 정보 공유에 차질이 생기면 한국의 방위 태세와 국민 안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통상 협상과 달리 안보 정보의 공백은 그 피해를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는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국익을 지키려면 미국의 조치가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데 그치지 말고 갈등의 원인을 규명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문제가 된 정보가 이미 공개됐거나 사실관계에 착오가 있었다는 취지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충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우려가 모두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의 불신을 해소하지 않은 채 문제 자체를 부정해서는 해결이 어렵다. 정보 취급과 대외 발언의 경위를 확인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한편 미국에도 정보 공유 정상화를 적극 요구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굴종과 사대라는 표현을 앞세운 것은 아쉽다. 야당이 정 장관 등 이른바 자주파 인사의 경질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이에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외교적 발언은 국내 정치만을 향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 정보당국에 대한 신뢰 문제를 제기하고 주미 대사마저 소통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시점이라면 대통령은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고 갈등 해결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자주외교는 강경한 말이 아니라 국익에 필요한 협력을 확보하는 능력으로 증명된다.

한국이 추진하는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도 한·미 간 신뢰와 무관하지 않다. 민감한 안보·핵 협력은 상대국의 신뢰 없이는 진전되기 어렵다. 정부는 고위급 소통을 복원해 갈등의 원인과 해소 조건을 명확히 하고, 필요하다면 외교안보라인에 책임을 묻는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양보가 해법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개선 노력 없이 상대의 태도만 탓하는 것도 책임 있는 외교가 아니다.

한·미 동맹은 구호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자주국가의 위상은 굴종하지 않는 말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지켜내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실용적 국익 외교가 진정한 원칙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강한 수사가 아니라 냉정한 판단과 신속한 신뢰 회복이다. 동맹의 균열을 방치한 채 자주외교만 외치는 것은 국익을 지키는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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