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인외? -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 변하고 닳는 존재들을 지켜내는 사랑의 방식

사진출판사 난다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사진=출판사 난다]

내 애인이 어느 날 외계인이 된다면 어떨까.

꽤 근사한 ‘인외 로맨스’(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로맨스)의 시작일지도 모르는 설정이다. 소설 '지구에서 한아뿐'의 주인공 한아에게는 11년을 만난 연인 경민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경민의 모습을 한 외계인이 한아 앞에 나타난다. 겉모습은 경민과 똑같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다. 팔에 있던 흉터는 사라졌고, 질색하던 가지도 잘 먹는다. 무엇보다 이전의 경민과 달리 한아에게 유난히 다정하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2만 광년을 건너 당신에게 왔노라고.

경민의 탈을 쓴, 초록빛을 내뿜는 이 외계인은 자신이 한아에게 끌린 이유를 ‘한아가 일관된 사람이고, 마치 홀로 엔트로피와 싸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물리학에서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 에너지가 점점 퍼지고, 어떤 상태가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워지는 정도를 뜻한다. 모든 것은 가만히 두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계인 경민은 한아가 그런 닳아가는 것들을 그저 내버려두지 않는 사람이기에 좋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아는 옷 수선집 ‘환생’을 운영하며, 닳은 옷을 고쳐 다시 입게 하는 일을 고집한다. 그렇다고 한아가 옷을 처음 모습 그대로 되돌리는 것은 아니다. 이미 변해버린 형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 남아 있는 쓰임과 의미가 조금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도록 손을 보탠다. 그것이 한아가 엔트로피와 맞서는 방식이자, 무언가를 지켜내는 방식이다.

사랑도 비슷한 일인지 모른다. 우주에 존재하는 누구의 사랑이든, 육신이 닳는 한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우주의 모든 것은 변하고, 닳는다. 그렇다면 불변하는 사랑이라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모든 것이 변하는 동안에도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하는 무언가를 끝내 지켜내는 것에 가깝다.

즉, 사랑은 변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하고 닳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 에너지를 들이는 일이다. 한아가 달라진 옷의 형태에 맞춰 고치고 다시 매만지면서도 끝내 그 옷을 놓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랑에는 어느 정도의 고집도 필요하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면 외계인 경민 역시 한아의 사랑 방식을 닮아간다. 한아의 육신도 언젠가는 닳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민이 끝까지 붙들고 싶은 것은 한아의 몸이 지금 모습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라기보다, 그 안에 담긴 ‘한아’라는 존재 자체에 가깝다. 형태는 변하더라도 한아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경민은 한아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육신이 닳은 뒤에도 한아와 계속 함께하고자 한다. 낡은 옷의 원형 대신 그 안에 남은 쓰임과 의미를 이어가던 한아처럼, 경민 역시 몸이라는 형태 너머의 한아를 이어가려는 것이다.

'지구에서 한아뿐'에서 사랑은 결국 지켜내는 일에 가깝다. 지구에서 하나뿐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엔트로피에 맞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형태가 달라지고, 모습이 변하고, 심지어 어느 날 내 애인이 외계인이 되어 나타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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