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증명할 필요 없기에… 영화 '가능한 사랑'

  • 끝내 가능한 사랑에 대하여

영화 가능한 사랑Possible Love 사진IMDB
영화 '가능한 사랑(Possible Love)' [사진=IMDB]

*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를 나란히 세우며 진행된다. 두 부부 사이에는 분명한 경제적·계급적 간극이 존재한다. 실제로 영화는 집단 해고와 그 후유증, 서로 다른 계급에 놓인 두 부부의 관계를 여러 층위에서 겹쳐 보여준다. '가능한 사랑'의 첫인상이 계급인 이유다.

하지만 미옥과 호석 부부를 따라가다 보면,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사랑이다. 미옥과 호석의 사랑은 영화 속 두 번의 보름달과 함께 떠오른다.

첫 번째 보름달은 두 사람의 과거에 떠 있다. 미싱 공장에서 일하던 미옥에게 호석이 손을 내민다. 둘은 함께 공장을 빠져나오고, 둥근 달을 올려다보며 결혼을 생각한다. 아직 군인인 호석과 막 공장을 뛰쳐나온 미옥. 무엇 하나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은 삶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함께 그 삶을 향해 걸어가기로 한다. 보름달 아래에서 두 사람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사랑을 믿는다.

두 번째 보름달은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떠오른다. 이번에는 예지와 상우의 별장에서 미옥이 호석에게 손을 내민다. 오래전 호석이 미옥을 공장에서 데리고 나왔듯, 이번에는 미옥이 호석을 데리고 별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같은 보름달 아래 나란히 앉아 달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그들의 시간을 지켜본 관객 역시, 다시 한번 '가능한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영화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EPA 연합뉴스
영화 '가능한 사랑' 이창동 감독 [사진=EPA 연합뉴스]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을 제목 그대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 사랑을 선언하는 이는 호석도 미옥도 아닌, 예지다.

예지는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호석과 미옥을 사랑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그들의 일상 가까이로 들어가려 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자신의 태도를 예지는 사랑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예지가 말하는 사랑은 관객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끊임없이 확인하고, 표현하고, 증명해야 하는 무엇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사랑은 오히려 하나의 과제가 되어간다.

반면 미옥과 호석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해고 이후 호석은 술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술을 마시지 않던 미옥은 어느새 그의 곁에 나란히 앉아 함께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미옥은 호석에게 술을 끊으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호석의 상처를 대신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다만 함께할 뿐이다.

미옥과 호석의 사랑은 연대와도 닮아 있다. 노동의 세계는 사람에게 자신의 쓸모를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생산적인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해고 노동자 호석은 그 기준에서 밀려난 사람이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나 미옥의 곁에서만큼은 호석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은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지만, 서로를 혼자 두지도 않는다. 이창동 감독 역시 어떤 사랑이 가능한 사랑인지 증명해 보이지 않는다. 관객을 미옥과 호석이 섰던 그 자리에 함께 세워, 같은 보름달을 올려다보게 할 뿐이다. 그 달 아래에서 우리도 두 사람처럼, '가능한 사랑'을 믿어본다.

호석과 미옥의 사랑은 풋사과와 함께 시작된다. 풋사과는 처음 베어 물면 시고 떫지만, 오래 씹고 나면 그 안에 숨어 있던 단맛이 뒤늦게 배어 나온다. '가능한 사랑'도 그렇다. 이 영화를 오래 곱씹게 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