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일주문 앞에 세운 고려의 시문…이승휴 '단모부'·김방경 '답부' 시비 제막

  • 상락공 김방경 작위 축하한 글과 화답한 글, 나란히 새겨 700여 년 만에 한자리에

시비 제막식 사진삼척시
시비 제막식. [사진=삼척시]

3일 천은사 일주문 앞에서 고려 후기 문신 이승휴 선생의 '단모부'와 김방경 장군의 '답부'를 새긴 시비 제막식이 열렸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을 돌에 새겨 후대에 전하는 자리로, 천은사 일주문을 찾는 탐방객과 불자들이 고려 시대 선현의 정신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이승휴 선생의 '단모부'는 상락공 김방경이 상락군 개국공 작위를 받은 것을 축하하며 그의 행적을 기린 글이다. 김방경 장군의 '답부'는 이에 대해 상락공 김방경이 응답한 글이다. 한 사람이 공적을 기리는 글을 지어 보내고 다른 한 사람이 글로 화답한 셈이어서, 이번 시비는 두 선현의 교유와 서로를 향한 존중을 함께 보여주는 기록물로서 의미가 크다.
 
이승휴 선생은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학자로, 우리 역사를 시로 풀어낸 『제왕운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두타산 자락의 천은사에 머물며 학문과 저술에 매진했다. 천은사가 이승휴 선생의 자취가 깃든 공간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김방경 장군은 고려 후기의 명장으로, 삼별초 진압과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등 굵직한 역사의 현장에서 이름을 남겼다. 상락공이라는 호칭은 그가 받은 봉작에서 비롯됐으며, 상락은 오늘날 안동의 옛 이름이다. 붓을 든 문신과 칼을 든 무장이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두 사람은 글로 마음을 주고받았고 그 기록이 오늘에 이르렀다.
 
시비가 세워진 천은사 일주문 앞은 사찰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지나는 길목이다. 산사로 들어서는 발걸음 앞에서 고려 시대 선현의 글을 마주하게 된 만큼, 시비는 천은사가 지닌 역사와 문화의 깊이를 알리는 안내판 구실도 하게 될 전망이다.
 
이번 제막은 한문으로 전해 내려온 고전 작품을 일반 탐방객도 접할 수 있는 형태로 남겼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오래된 문헌 속에 머물러 있던 글이 돌에 새겨져 사찰 앞에 자리하면서, 지역의 역사 인물과 그들이 남긴 문학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작위 수여를 축하하는 글과 이에 답하는 글이 한 쌍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은 당대 지식인과 무장 사이의 예의와 신뢰를 짐작하게 한다. 상대의 공을 높이 평가해 글로 남기고, 이를 겸허히 받아 다시 글로 응답한 모습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시대를 넘어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일깨운다.
 
시비 앞에 서는 이들은 700여 년 전 고려의 선현이 주고받은 글을 통해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천은사와 이승휴 선생, 김방경 장군이 남긴 유산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천은사 일주문 앞에 세워진 이번 시비는 앞으로 이승휴 선생과 김방경 장군의 문학적 유산을 알리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 많은 탐방객의 발길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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