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 금성산 땅속에서 잠자던 청동 화약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체에는 '정사년 12월 황자화통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자 28자가 남아 있다. '정사년'은 1377년 고려 우왕 때 또는 1437년 조선 세종 때로 추정된다. 어느 쪽이든 지금까지 실물이 확인된 국내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21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화약무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의 조사·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황자화통은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의 소형 화기다. 화약을 넣어 화살이나 탄알을 쏘는 ‘화통’은 고려시대 화약무기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조선시대에는 주로 ‘총통’이라 불렸다.
관건은 ‘정사년’이다. 연구진은 문헌 기록과 화약무기 발달사를 토대로 1377년과 1437년 두 가능성으로 좁혔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차원의 화약무기 생산이 시작된 해다. 1437년은 세종 때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하던 시기다. 비교할 실물 자료가 부족해 어느 해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두 경우 모두 새로운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된 1445년보다 앞선다.
유물의 생김새도 초기 화기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화약을 채우는 ‘약통(藥筒)’ 내부가 둥글어, 화약의 폭발력을 발사체에 전달하는 나무 마개인 ‘격목(擊木)’을 사용한 세종대 개량 화기와 차이가 난다. 연구진은 세종대 개량 이전의 모델로 추정하면서도 기존 형식이 일정 기간 이어졌을 가능성을 고려해 1377년과 1437년 두 연대를 모두 열어두고 있다.
황자화통은 화약을 넣고 화살 등 발사체를 장전한 뒤 심지에 불을 붙여 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발의 화살을 쏘는 단발식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작은 화살 여러 발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로, 사람의 근력에 의존하던 활과 칼을 넘어 화약의 폭발력을 전투에 이용하기 시작한 새로운 무기 체계가 등장하던 시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 분석 결과 황자화통은 구리와 주석,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청동 주조품으로 확인됐다. 주석 함량은 10% 이내로, 폭발에도 깨지지 않도록 강도와 연성을 함께 확보한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황과 규소, 은 등 제련 과정에서 남은 불순물도 확인돼 전통적인 청동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물임을 뒷받침했다.
황자화통은 2023년 11월 금성산 등산로 개설을 앞두고 ‘미확인 지뢰지대’를 탐지하던 중 우연히 발견됐다. 지뢰탐지기가 바위 아래 표토 약 10㎝ 지점에서 반응했다. 이후 나주연구소는 약 3년에 걸쳐 과학 분석과 전문가 자문을 통해 명문과 제작 시기, 진위 등을 검토했다. 옛 화약무기 가운데 정확한 출토지가 확인된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금성산은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군사 요충지였다. 1376년 왜구 침입으로 나주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듬해인 1377년에는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됐다. 1378년에는 화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화통방사군’을 지방 주요 거점에 배치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자화통이 1377년 제작됐다면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지방에 화약무기가 보급되던 흐름과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연구진은 황자화통이 금성산에 놓이게 된 경위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고려 말 화통도감 설치를 계기로 시작된 우리 화약무기의 역사는 세종대 대대적인 화기 개량을 거치며 크게 발전했지만 그 과정은 문헌 기록으로만 전해질 뿐 실물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며 “황자화통은 우리 화약무기의 초기 역사를 실물로 확인하고 그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정확한 제작 연도와 제작 기술, 실제 사용 방식 등을 추가로 규명할 계획이다. 학술대회와 발사체 재현 실험도 추진한다. 황자화통은 오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12월 대한민국 국제지상군방위산업전에도 이를 출품할 예정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