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은 이날 오전 10시 경북 포항과 경산에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를 발령했다. 일 최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이어진 지역에서 체감온도 38도 이상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이 하루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지는 최고 단계 경보다. 기존 폭염특보만으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의 극한더위'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새롭게 도입됐다.
외교부 청사에서 아주경제와 만난 견종호 외교부 기후변화대사는 이상기후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방향은 분명하지만 이를 이끌 정치적 리더십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제사회의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탄소를 줄이고 지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기술도 선점하고 앞서가는 게 맞습니다."
견 대사는 미국이 국제 기후협상에서 사실상 이탈한 이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대립이 한층 격화됐다고 말했다.
"미국이 빠진 상황에서 국제무대의 협상을 이끌어 갈 주도세력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 세력이 공백 상태입니다. 유럽연합이 더 주도해 주면 좋겠지만 EU도 경제적 상황이 어렵습니다."
최근 독일 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에서도 이런 변화를 직접 체감했다고 했다.
"예전에는 기술적인 이슈는 합의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사안을 놓고 그룹끼리 부딪힙니다."
유엔 기후협상은 모든 당사국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컨센서스 방식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반면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은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정교하게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개도국들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중동국가들도 EU 못지않은 협상력을 보여줍니다."
개도국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탄소를 대량 배출한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며 기후재원과 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은 성장 둔화와 재정 부담으로 과거 같은 지원을 약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줄여야 할 탄소와 각국이 실제 약속한 감축량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습니다."
"중동 사태가 오히려 재생에너지 전환 앞당겨"
견 대사는 중동 분쟁 역시 역설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올해 중동 사태로 에너지 안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졌습니다. 역설적으로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줬습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에는 기후정책과 에너지 안보가 사실상 같은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에너지 자립을 위해서는 결국 재생에너지가 강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전기사회와 재생에너지 확대입니다."
그는 정부가 제시한 2030년 전기차 420만 대, 수소차 30만 대 보급 목표도 달성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차와 기아를 중심으로 경쟁력 있는 공급망을 갖고 있습니다. 방향성이 맞고 선진국 등과 비교해서 목표가 매우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견 대사는 차기 국제 기후협상의 핵심 의제 역시 '전기화(Electrification)'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탈석탄 발표에 국제사회 놀랐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과 석탄발전 의존도가 높아 기후 대응이 쉽지 않은 국가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탈석탄 정책은 오히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소 약 60기를 폐지하고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탈석탄동맹(PPCA)에도 가입했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인데 제조업 강국 가운데 한국만큼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을 추진하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탈석탄동맹 가입 발표 당시 국제사회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는 탄소 감축을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가 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가 기술을 선점하고 앞서가는 것이 맞습니다."
기후정책은 이제 통상정책과도 연결되고 있다. 유럽연합은 올해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했고 영국 등도 유사한 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견 대사는 국가마다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기업 부담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은 ESG 차원에서 이미 탄소 감축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강제하면 민간의 기후행동을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빌딩 블록'이 아니라 '스텀블링 블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기후·무역 규범은 비차별성, 일관성, 호환성이라는 세 원칙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빠진 기후협상…중국과 협력 공간 크다"
미국의 부재는 중국의 역할도 바꾸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최근 7년 만에 기후변화협력 공동위원회를 재개했다.
"미국이 협상에서 빠졌기 때문에 기후협상 안에서 미중 경쟁 구도는 아닙니다. 감축과 무역, 적응 등 분야별로 중국과 협력할 여지가 상당히 큽니다."
한국이 속한 환경건전성그룹(EIG)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절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국도 앞으로 대안을 더 많이 제시해야 합니다."
견 대사는 기후협상도 결국은 외교라고 말했다.
"상대방의 레드라인을 읽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주장해서는 합의할 수 없습니다."
그는 외교관들 사이에 전해지는 말을 소개했다.
"협상을 100대 0으로 이기면 바보입니다. 60대 40 정도로 이겨야 상대도 자기 나라에 돌아가 결과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국제사회는 점점 타협보다 대립으로 흐르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기후변화대사가 된 뒤에는 개인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저는 BMW를 실천합니다. 버스(Bus), 메트로(Metro), 워크(Walk)입니다."
유럽의 기록적 폭염과 한국의 첫 폭염중대경보가 기후위기를 미래의 경고가 아닌 현재의 재난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견 대사는 국제사회의 합의를 기다리기보다 한국이 먼저 산업과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가 가는 방향은 명확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이 기술을 선점하고 앞서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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