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성수·한남 등 주요 정비사업지를 둘러싼 대형 건설사 간 수주 경쟁이 해외 스타 설계사 영입전으로 번지고 있다. 이사비·금융 지원 등 재산상 이익 제공 경쟁이 제한되면서 건설사들이 세계적 설계사무소와 손잡고 외관 디자인과 단지 콘셉트를 앞세워 조합원 표심 공략에 나서는 모습이다.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물론 용산 한남동, 성동구 성수동 등 주요 정비사업지에서는 글로벌 설계사 참여가 핵심 경쟁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해외 설계사와의 협업은 하이엔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현대건설은 압구정3구역 재건축에 람사(RAMSA), 압구정5구역에는 RSHP를 참여시켰다. GS건설은 성수1지구에서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DCA), 서초진흥아파트 재건축에서 MVRDV 등을 앞세우고 있다. DL이앤씨도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아크로 목동 리젠시·아크로 압구정5구역 등에서 해외 설계사와 협력 중이다.
성수전략정비구역 4지구에서도 글로벌 건축가 경쟁이 치열하다. 롯데건설은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와 손잡은 설계안을, 대우건설은 리처드 마이어와 협업한 설계안을 각각 제시했다. 두 건축가 모두 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다.
건설사들이 해외 설계사 영입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정부 규제도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부 규제로 이사비 지원 등 재산상 이익 경쟁이 어려워지면서 설계 차별화 경쟁이 본격화됐다”며 “조합원 표심을 잡기 위해 해외 설계사 영입이 중요한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
해외 설계사는 주로 단지 전체 콘셉트와 파사드(외관), 조경, 커뮤니티 공간 배치 등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을 맡는다. 반면 국내 설계사는 용적률과 일조권, 구조 안전 등 국내 건축법을 반영해 실제 설계 도면 작성과 인허가 절차를 담당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조합이 직접 해외 설계사를 선정하는 사례도 나온다. 여의도 대교아파트 재건축은 올해 초 국내 정비사업 최초로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영국 헤더윅 스튜디오를 설계업체로 선정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무지개마을10단지·S8구역 추진준비위원회도 유엔스튜디오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다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내 설계사무소 관계자는 “해외 설계사는 국내 건축법과 인허가 기준에 익숙하지 않을 때가 많아 국내 설계사가 이를 보완한다”며 “해외 설계사 참여로 설계비가 높아지고 공사비 증액 부담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려한 조감도와 실제 준공 결과물 간 괴리 문제도 지적된다. 인허가 과정에서 입찰 당시 제시된 디자인이 축소되거나 변경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동일한 해외 설계사가 여러 건설사와 다른 정비사업지에서 협업하는 ‘중복 협업’ 사례도 늘고 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해외 설계사 경쟁은 조합원 표심을 위한 마케팅 성격이 강하다”며 “해외 설계사가 콘셉트 디자인만 제안하고 실제 설계와 인허가는 국내 설계사가 맡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검증된 준공 사례가 많지 않은 만큼 단순 협업 홍보에 현혹되기보다 실제 공동 설계 참여 여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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