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 원칙 상식] 농협은행 5000억 유증…'몸집 키우기' 넘어 책임 있는 기업금융 전략 보여야

NH농협은행이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기업금융 확대에 나섰다. 자본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기업대출을 늘리고, 시중은행 상위권과의 격차를 좁히겠다는 전략이다. 자본 적정성을 유지하면서 실물경제를 지원하겠다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번 증자가 단순한 ‘몸집 키우기’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책임 있는 성장 전략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있다.

NH농협은행 사진연합뉴스
NH농협은행 [사진=연합뉴스]


우선 이번 유상증자를 둘러싼 논의에서 흔히 제기되는 ‘지분 희석’ 논란은 이 사안의 본질이 아니다. 농협은행은 상장사가 아닌 농협금융지주 100% 자회사다. 일반 투자자 지분이 희석되는 구조가 아니다. 따라서 핵심은 주주 설득이 아니라 자본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책임성과 전략의 문제다. 자본 확충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그 자본이 어디에, 어떤 기준으로 투입되느냐다.


은행의 유상증자는 위험을 키우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위험을 감당하기 위한 준비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높이는 것은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건전성 조치다. 실제로 기업대출을 확대하려면 그만큼 자본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증자 역시 기업금융 확대를 전제로 한 ‘선제적 방어’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외형 확대나 리스크 확대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다만 자본이 늘어난 이후의 행보는 별개의 문제다. 자본 확충은 출발선일 뿐, 이후 어떤 대출 전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농협은행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 확대는 방향은 옳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중소·중견기업과 첨단 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필연적으로 정보 비대칭이 크고 리스크도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사를 강화할 것인가 완화할 것인가’의 이분법이 아니다. 정책금융의 본질은 위험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도, 무분별하게 떠안는 것도 아니다. 목적에 맞게 위험을 선별하고 분산하는 능력에 있다.


즉, 농협은행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대출 확대가 아니라 ‘목적형 금융’의 정교화다. 산업별 특성을 반영한 심사 기준, 보증·분담 구조를 통한 리스크 분산, 사후 관리 강화 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책금융과 상업금융은 대립 개념이 아니라 조합의 문제다. 공공성을 이유로 심사를 느슨하게 하면 부실로 이어지고, 수익성을 이유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하면 정책 목적이 무력화된다. 이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이번 증자의 성패를 가른다.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성장 방식’이다. 농협은행은 기업대출을 확대해 외형과 수익 기반을 동시에 키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금융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기존 시중은행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에서 후발 주자가 점유율을 확대하려면 결국 금리, 한도, 속도 등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단기적인 영업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규모 확대 경쟁에만 매몰되면 대출의 질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하면 시장에서 밀릴 수 있다. 따라서 ‘규모냐 신뢰냐’의 선택이 아니라 ‘규모 확대 속에서 신뢰를 유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출 잔액을 얼마나 늘렸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산이 얼마나 건전하게 유지되느냐다. 은행의 경쟁력은 결국 신뢰에서 나온다.


금융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본 확충 자체를 제약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선제적 자본 확충은 금융 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다만 자본이 위험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감독 체계는 정교해야 한다. 사전 규제와 사후 감독이 균형을 이뤄야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한다.


이번 유상증자는 단순한 재무 이벤트가 아니다. 농협은행이 어떤 은행으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 선언이다. 정책금융을 내세운 외형 확대가 단기 성과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기업금융 모델로 자리 잡을지는 이제 실행에 달려 있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기관이 아니라 신뢰를 빌려주는 기관이다. 자본은 그 신뢰를 지탱하는 기초 체력이다. 체력이 늘어난 만큼 책임도 커진다. 이번 증자가 ‘몸집 키우기’가 아니라 ‘체질 개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시장은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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