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중국 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강남 학부모들, 이제는 자녀 진로교육의 방향을 바꿀 때다

선진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숫자와 통계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과 제도의 성숙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지는 문명적 성취다. 우리는 이미 1인당 국민소득과 산업 규모에서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그러나 진정한 선진국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기술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그 기술을 떠받치는 정신과 문화, 철학적 토대는 과연 충분히 단단한가. 이 질문 앞에서 중국의 변화를 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중국은 오랜 세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질서 속에 있었다. 학문을 닦는 선비가 지배하고, 농업이 국가의 근간이었으며, 장인과 상인은 하층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은 그 위계를 사실상 뒤집었다. 공학과 기술, 곧 ‘工’이 국가 운영의 중심이 되었다. 최고 지도자 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학습의 결과다. 아편전쟁의 굴욕, 대약진운동의 참극, 문화대혁명의 파괴를 거치며 중국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기술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과학이 약하면 문명도 무너진다. 이 집단적 기억이 오늘의 테크노크라시를 낳았다.
 

중국의 이공계 중심 체제는 단순한 교육 트렌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이다. 가오카오라는 선발 구조는 수학과 과학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청화대학은 기술 엘리트를 권력의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중국은 기술을 이해하는 지도자를 더욱 요구한다. 기술 전쟁의 시대에 기술을 모르는 지도자는 구조적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그 배경에 있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모방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기술은 국가 발전의 핵심 동력이지만, 기술만으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오래된 경전인 주역(周易)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을 말한다. 이는 단지 길흉을 점치는 문구가 아니라 문명 발전의 네 기둥을 상징한다.
 

원(元)은 으뜸이자 근원이다. 인간 존재의 본성과 영성을 뜻한다. 종교와 도덕, 인간 존엄에 대한 성찰이 여기에 속한다. 형(亨)은 형통이다. 문화와 예술이 꽃피어야 사회는 숨을 쉰다. 리(利)는 이로움이다. 철학과 사유가 사회의 방향을 잡는다. 정(貞)은 곧음이자 굳셈이다. 과학과 기술의 축적이 국가의 실력을 만든다. 이 네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국가는 선진국이 된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 곧 과학기술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었다. 반도체, 배터리, 정보통신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 여기에 ‘피지컬 AI’라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인공지능이 물리적 세계와 결합해 제조·물류·국방·의료를 혁신하는 시대다. 이 흐름을 선도하지 못하면 우리는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따라서 공대 중심의 교육 강화와 기술 인재 우대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 문화다. 여전히 강남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의대 진학이 최고의 성공 경로로 여겨진다. 의사는 존경받아야 할 직업이다. 그러나 국가 전략 차원에서 모든 인재가 의료로 몰리는 구조는 건강하지 않다. 반도체와 AI, 로봇과 양자 기술을 이끌 인재가 부족해진다면, 우리는 미래의 전장을 잃게 된다. 교육의 방향은 곧 국가의 미래다.
 

이제 공학과 과학을 국가적 사명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다만 다시 강조하건대,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국의 사례는 효율과 집행력의 강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다양성과 비판적 토론의 공간이 좁아지는 한계도 드러낸다. 우리는 기술을 키우되 헌법적 가치와 자유, 인문적 성찰을 함께 키워야 한다. 원형이정의 네 기둥은 분리될 수 없다. 과학이 윤리적 성찰 없이 폭주하면 위험하다. 문화와 예술이 빈약하면 사회는 메마른다. 철학이 사라지면 기술은 방향을 잃는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략은 이 균형 위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첫째, 반도체와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국가 기술 전략을 명확히 하고, 인재 양성 시스템을 공대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둘째, 인문학과 철학 교육을 강화해 기술의 방향을 묻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셋째, 문화예술의 창의성을 존중해 사회의 감수성을 살려야 한다.
넷째, 종교와 윤리의 차원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제도적 장치를 굳건히 해야 한다.
 

결국 선진국은 공장만 많은 나라가 아니다. 인간을 존중하고, 문화가 숨 쉬며, 철학이 방향을 제시하고, 과학이 힘을 보태는 나라다. 중국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빠르게 답하고 있다. 우리는 그 속도를 배우되 ‘왜’라는 질문을 잃지 말아야 한다. 기술은 도구이고, 인간이 목적이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교육 열풍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안정된 직업만을 권하는 대신, 미래를 설계하는 과학자와 공학자로 성장하라고 격려해야 한다. 국가 역시 공대 출신 인재가 존중받고 보상받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인재는 의대만이 아니라 연구실과 공장, 우주와 반도체 클린룸으로 향할 것이다.
 

원형이정의 네 기둥 위에 세워진 기술국가.

과학기술을 중시하되 인간의 본성과 영성을 잊지 않는 나라.
문화와 철학이 숨 쉬는 나라.

그러한 균형 위에서 피지컬 AI와 반도체를 국가 전략으로 삼는다면, 대한민국은 숫자의 선진국을 넘어 문명의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기술은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인문은 우리를 바르게 만든다.
강함과 바름이 함께할 때, 비로소 선진국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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