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소위 ‘강단 사학계’는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하였다. 환단고기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그런 주장을 ‘식민사학’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대부분 국민은 왜 저렇게 흥분할까 어리둥절할 뿐이다.
역사 연구란 참고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활용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취하는 기본적 태도이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 역사 연구가 처한 현실을 살펴보자. 어느 나라든지 과거로 올라갈수록 기록과 유물이 많지 않아서 과거 규명에 빈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해 내려온 사료가 빈약하다. 그렇게 된 데는 특히 과거에 사료의 대대적인 멸실을 겪은 것이 큰 이유이다. 조선 왕조는 이성계의 '쿠데타'에 의해 건국되다 보니 왕조의 정통성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명(明)의 정치적 지지가 절실하여 사대 외교를 펴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격하하는 정책을 취했다. 태종 때 단군조선에 관한 <신비집(神秘集)>을 불살랐고, 세조~성종 연간에는 여러 번 수서령(收書令)을 내려 중국 중심 성리학적 사관에 반하는 선가(仙家) 계열의 사서들을 수거하여 폐기하였다. 대일 항쟁기에는 일제가 단군조선에 관한 사서들을 수거하여 폐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은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도 제도적으로 막았다. 그 결과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 연구가 기존의 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도 어렴풋이 우리의 옛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나타나곤 하였다. 1970년대 말에 그간 비전되어온 사서들이 ‘환단고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우리 역사 연구의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획기적인 사료로 기대하며 환영하였다. 반면에 강단 사학계는 위서라며 거론하는 것조차 꺼렸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사서의 이름이 아니라 고려시대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여러 사서 즉, 삼성기전(환국, 배달국), 단군세기, 북부여기 및 태백일사(고구려, 발해, 고려)를 묶은 것에 붙인 이름이다. 이 사서들은 편찬한 사람과 시기가 모두 다르다. 뭉뚱그려 ‘환단고기’라고 하면서 4개 사서 중 어느 하나의 특정 구절을 거론하면서 전체를 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문하는 자세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일부 중국과 일본의 사서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사서라고 해서 과거사를 모두 기록하지는 않으며 물리적으로 그럴 수도 없다. 모든 사서 편찬은 취사선택(取捨選擇)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어떤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는 편찬자의 사관(史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는 역사 서술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으로 춘추필법(春秋筆法)이 있는데 이는 중국에 불리하거나 부끄러운 일은 감추거나 축소한다는 것이다.
‘환단고기’를 둘러싸고 강단 사학과 비제도권이 서로 비난하며 단순히 진영 싸움으로 흐르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강단 사학계’가 비제도권 학자들에 대해 학위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학문적 우위를 주장하였는데 그런 주장은 이제 설득력이 없다. 이제는 모든 사료가 디지털화되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욱이 비제도권 연구자들의 한문 원전 해독력이 제도권 연구자들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양 진영 연구자들이 함께 문제의 사서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해 치밀하게 다른 사서와 비교하면서 공개 토론 과정을 거쳐 검증하면 된다. 그런데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3개 기관 모두 “환단고기 관련 검토 및 연구를 한 적이 없으며, 향후에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하였다.
우리 역사에 관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서가 편찬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전해오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의 사서에 의존하여 우리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중국 사서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해 모든 일을 그리고 객관적으로 기록하였다고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서의 편찬 과정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다.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자연과학에서도 통설이 무너지곤 하는데 하물며 인문과학인 사학에서 통설에 집착할 이유가 있는가? 학자라면 어떤 문헌이든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편견 없이 검증하여 수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점에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한영우 선생(1938~2023)이 ‘환단고기’ 묶음에 들어있는 <단군세기>에 대해 평가한 글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고려시대에는 이미 고려 초에 편찬된 <구삼국사>라는 책에 <단군본기>가 있었고 이 밖에도 <삼성기> 등의 고기(古記)가 있었으며 일연과 이승휴가 이러한 기록들을 이용하여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지었으므로 (단군 세기의 저자) 행촌 이암이 이러한 기록들을 참고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서문의 현대적 분위기로 보아 이 서문은 행촌의 글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말 일제 강점기 이후 지식인의 손을 거쳐 윤색, 가필되었다는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이 책을 전적으로 위서로 판정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단군세기>도 행촌이 지은 모본(模本)을 토대로 후세인들이 중층적으로 가필 윤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하였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