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이재명 정부의 '24시간 메신저 국정' 실험

  • -멈춰 있던 국가를 깨우는 방식은 옳았는가

최근 정부 안팎에서 회자되는 장면이 있다. 대통령과 장관, 청장들이 참여하는 텔레그램 단체대화방이다. 이름은 ‘국무회의 확대’.  회의실도, 공식 결재 라인도 아닌 이 공간에서 국정 현안이 오가고, 질문이 던져지며, 답변이 즉각 돌아온다. 밤과 낮의 경계는 흐릿하다.
이 방의 마지막 참여자는 이재명이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이 인사 이후 국무회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났다. 새벽에도 대통령의 질문이 올라오고, 장관과 청장들은 실시간으로 답한다. 부처 간 이견이 있는 사안에서는 공개적인 반박과 설득이 오간다. 조용한 합의와 단계적 보고에 익숙했던 관료 사회에서는 이례적인 풍경이다.
 
이 장면을 단순한 ‘파격’이나 ‘이벤트’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이는 정치적 연출이 아니라 국정을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실험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 초반의 국정 운영은 관료 조직을 하나의 거대한 문제 해결 조직으로 재정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보고서보다 응답을, 형식보다 판단을, 직급보다 역할을 앞세우는 방식이다.
 
이 단체방이 ‘일잘러 판별방’으로 불린다는 후문은 상징적이다. 누가 사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누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지, 누가 끝까지 답을 내놓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기업, 특히 초기 조직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과 닮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여기서 흔히 제기되는 비판이 있다.
국가는 스타트업이 아니고, 대통령은 창업자가 아니다.
이 지적 자체는 틀리지 않다. 국정의 목표는 효율이나 성과가 아니라 합법성·공공성·절차적 정당성이다. 기업의 언어인 ‘느린 합의보다 빠른 실행’은 행정 영역에서는 언제든 졸속이나 월권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반론 역시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이 정부가 기업처럼 운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먼저 체득한 민첩성·즉시 피드백·책임 호출 방식을 국정에 이식하려는 시도라는 주장이다. 절차를 지키는 것과, 결정을 미루는 것은 다르다는 문제 제기다.
 
사실 이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방식은 효율을 숭배하기보다, 관료 조직에 깊게 뿌리내린 ‘안전한 무책임’의 관성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묻고, 장관이 직접 답하는 구조에서는 판단을 미룰수록, 책임을 뒤로 숨길수록 그 흔적이 남는다. 이는 기업가정신의 ‘위험 감수’라기보다, 책임 회피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압박에 가깝다.
 
특히 법적 해석이 필요한 사안에서 법제처장이 즉각 개입해 논의의 기준을 제시하는 장면은, 감이나 정치적 직관이 아니라 근거와 규범에 따라 판단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빠르되 무모하지 않으려는 시도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이 방식은 과연 시스템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실험인가, 아니면 대통령의 상시적 개입에 의존하는 과도기적 고강도 운영에 머무를 것인가. 지지자들은 말한다. 이미 시스템은 오래전에 멈췄고, 그것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선 강력한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지금은 인치가 아니라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한 임시적 집중이라는 주장이다.
 
이 논리 역시 일리가 있다. 다만 진정한 시험은 그 다음 단계에 있다. 리더의 질문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조직이 더 잘 돌아가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방식은 효율적일 수는 있어도 지속 가능하지는 않다.
 
또 하나의 쟁점은 기록과 책임이다. 메신저 공간에서의 실시간 소통은 내부적으로는 투명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적 플랫폼에서 오간 논의는 공식 기록으로 남기 어렵고, 관리와 공개의 원칙과 충돌할 여지도 있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메신저에서의 판단과 합의가 반드시 공식 기록과 결재 체계로 환원돼야 한다.
 
그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속도는 남고 책임은 사라진다. 효율의 언어가 행정의 언어를 잠식하는 순간, 혁신이 아니라 위험이 된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최근 국무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1시를 넘기는 강행군이 잦다고 한다. “점심 약속 없는 분들은 식사하고 가시라”는 대통령의 말에도 장관과 청장들은 각자의 다음 일정으로 흩어진다. 이 장면은 미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호다. 조직은 언제나 가장 열정적인 방식으로 먼저 피로해진다.
 
이재명 정부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국무위원은 자리를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요구다. 멈춰 있던 국가를 다시 움직이겠다는 의지다. 그 문제의식 자체는 시대적 요구에 가깝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전환이다.
 
이 ‘24시간 메신저 국정’이 위기 대응용 가속 장치에 머무를지, 아니면 기록과 책임을 갖춘 행정 시스템으로 옮겨갈지. 이 실험의 성패는 효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효율을 어디까지 제도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권력은 언제든 속도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은 오래 작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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