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린이의 투자노트] "회장님 부고 뜨면 주가는 오른다는데…맞나요?"

  • 고혜영 기자가 전하는 투자노트

사진제미나이
[사진=제미나이]

주식시장에는 '테마'가 있습니다. 테마란 특정 이슈가 불씨가 돼,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함께 움직이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반도체, 2차전지, AI처럼 비교적 단순한 테마가 있는 반면 기묘한 테마도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가 '별세 테마'입니다. "부고가 전해지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건데요. 기업의 실적이나 사업 전망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최대주주나 오너의 별세가 촉매가 돼 주가가 오르는 겁니다.

최근 김장연 삼화페인트 회장이 별세했습니다. 향년 68세. 고 김장연 회장은 오너일가 2세 경영자였습니다. 

지난 16일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이틀간 잠잠하던 삼화페인트 주가는 18일 장 초반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9월부터 5000원대 박스권에 머물던 주가는 17일 6000원대로 올라선 데 이어, 18일 7000원대를 19일에는 8000원대를 돌파했습니다. 

삼화페인트 외에도 수많은 기업에서 오너의 부고는 주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회사를 이끌던 오너가 세상을 떠났는데, 주가는 왜 오르는 걸까요. 

[주린이의 투자노트], 이번 회에는 '오너의 죽음'과 주가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오너의 별세는 주가를 끌어올린다?
통상적으로 기업 오너의 별세는 주가를 끌어올립니다. 대기업이나 중소·중견기업에서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물론 얼마나 오랫동안 주가가 상승하느냐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대체로는 단기간에 상승 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오너의 사망이 주가에 영향을 끼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이런 사건이 해당 기업에 중대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영권에 큰 변동사유가 발생합니다. 후계자에게 경영 승계를 이미 해놨다면 큰 문제될 게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다양한 시나리오를 파생시킵니다.

2019년 4월 8일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 때를 한번 볼까요? 직전 거래일인 그해 4월5일 3만6050원이던 한진 주가는 4월12일 4만8000원까지 갑자기 치솟았습니다. 아들·딸 간의 경영권 분쟁이 있을 수 있다는 심리가 반영된 겁니다. 다만, 이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는 빠르게 원래 흐름을 찾아갔습니다.

2022년 9월1일 고 윤병강 일성신약 창업주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창업주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2022년 9월2일 일성신약 주가는 9% 넘게 뛰었습니다. 그 다음 날(9월3일)엔 상한가를 찍었습니다. 역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불거진 영향입니다. 

결국 '오너의 별세'는 '경영권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잉태하고, 이 대목에서 주가를 꿈틀거리게 하는 것입니다. 통상 지분 셈법이 복잡한 기업의 경우 주요 주주 부고 소식 이후 경영권 분쟁 키워드가 따라붙습니다. 누군가 경영권을 흔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시장이 반응한 거죠.
 
삼화페인트도 경영권 분쟁 가능성?
이번 삼화페인트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삼화페인트는 '한 지붕 두 가족' 기업이었습니다. 삼화페인트는 고(故) 김복규·윤희중 공동창업주가 1946년 설립한 동화산업을 모태로, 오랜기간 두 집안이 공동으로 경영해왔습니다. 2003년 두 집안은 2세 동업경영시대를 맞이합니다. 고 윤석영 사장과 최근 별세한 김장연 사장이 공동 경영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2013년 삼화페인트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립니다. 경영권 분쟁 끝에 윤 회장 일가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김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확보했습니다.
 
문제는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윤 회장 일가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9월 30일 기준 윤석천과 윤석재 씨가 각각 삼화페인트 지분 5.52%, 6.90%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공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각각 윤 회장의 첫째, 셋째 아들입니다. 윤 전 회장 일가의 지분율을 모두 합하면 약 13%에 달합니다.
 
반면 김 회장 측 지분율을 보겠습니다. 별세한 김 회장은 22.76%를 보유한 최대주주입니다. 김 회장 장녀인 김현정 부사장의 지분은 3.04%, 김 회장의 친누나인 김귀연씨의 지분은 1.50%입니다. 김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전부 합쳐 27.3%입니다. 윤 전 회장 일가 지분율보다 2배 많지만 해당 지분율으로 경영권을 100% 지킬 수 있다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삼화페인트가 속한 중견기업의 평균 지분율은 34.5%에 달합니다. 김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이보다 7%포인트 가량 부족한 상황이죠. 아울러 올해 2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경영권 분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지난해 경영권 분쟁을 공시한 87개 상장사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지분율은 평균 26.1%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김 회장 일가 지분율이 경영권 분쟁에서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걸 시사합니다.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 가격은 상승한다"
결국 김 회장 일가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해법은 단순합니다. 지분을 더 사들이는 것. 시장에 풀려 있는 주식을 확보해 우호 지분을 늘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유통주식 수가 줄게 되고, 상대적으로 주가는 상승하게 됩니다.

이 때문일까요. 일찌감치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베팅하면서 삼화페인트를 사려는 개인투자자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지난 17일 22만7068주에 불과하던 삼화페인트 거래량은 이튿날 976만5251주로 하루 만에 4200% 폭증했습니다.
 
투자 주체별로 뜯어보면 개인 투자자가 거래량을 끌어올렸습니다. 10일부터 15일까지 4거래일 연속 팔자 행진을 지속했던 것과 달리 김 회장이 별세한 16일부터 개인투자자는 나홀로 '사자' 태세를 보였습니다. 개인의 순매수는 16일 2만5313주, 17일 9405주, 18일에는 2만8143주, 19일에는 16만주로 무섭게 이어졌습니다. 개인이 나흘만에 4억3448만원 어치를 순매수한 겁니다.

이번 회차를 마무리해봅니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오너의 별세는 주가에 즉각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별세' 테마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숱한 기업 오너의 별세 이후 주가 흐름을 보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경영권 분쟁을 위한 표 대결 자체가 성립하지 않거나, 내부적으로는 교통정리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영권 분쟁이 실제 발발하면 주가는 계속 요동치겠죠.

그래서 이런 케이스일수록 공시를 꼼꼼히 더 살펴봐야 합니다. 상장사에서 최대주주나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변하면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합니다. 주식 매매, 상속, 증여 모두 공시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주식 수가 단 1주만 바뀌어도 시장에 알려야 합니다. 불투명했던 승계 구도가 윤곽을 드러내거나, 지분 매입이 마무리되고 있는지 될 경우 시장의 긴장감은 빠르게 식습니다. 그때부터 주가는 다시 냉정해지기 마련입니다.

투자의 세계는 냉혹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호재'로 작용한다는 것도 어찌보면 냉혹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주경제 증권부 신입기자 고혜영입니다
주린이의 투자노트는 주식 초보의 시각에서 주식시장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아주경제 증권부 신입기자 고혜영입니다.
[주린이의 투자노트]는 주식 초보의 시각에서 주식시장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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