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내란 재판 앞에서 회피와 침묵은 권리가 아니다

국가 권력이 무력을 동원해 헌정 질서를 전복하려 했다는 수사 결과가 공식 발표됐다. 180일간 활동한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12·3 비상계엄 수사 결과는 이 사안이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는 정권의 성격이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민주공화국의 존립 자체를 묻는 문제다.

특검이 밝힌 수사의 핵심은 명확하다. 비상계엄은 돌발적 판단이 아니라 장기간 준비된 계획이었고, 목적은 위기 관리가 아니라 권력의 독점과 유지였다. 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사법·입법 권한을 장악하며, 언론과 선거관리 체계를 통제하려 했다는 정황은 헌법 질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시도다. 헌법이 허용한 비상권한을 이용해 헌법 자체를 중단시키려 했다면, 이는 민주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특히 정치적 반대 세력과 선거 제도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제거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대목은 사안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한다. 민주주의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은 정치적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무력 동원의 명분으로 삼는 순간, 민주주의는 주장이나 해석의 영역을 벗어나 파괴의 국면으로 들어선다. 선거관리위원회 점거와 인력 체포 계획은 국가 정통성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을 부정한 것이다.

더 심각한 의혹은 외부의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고조시켜 계엄 요건을 만들려 했다는 정황이다. 국가 안보를 통치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면, 이는 단순한 직권 남용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행위다. 어떠한 권력도 헌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헌법을 파괴할 권한은 없다.

이제 시선은 재판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내란 재판은 정치적 보복의 절차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공적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자들이 증언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부인하며, 절차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또 한 번 국민과 헌법 앞에 도전하는 행위가 된다. 재판은 침묵으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회피가 허용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수사가 제시한 사실과 증거가 중대하다면, 재판은 그에 상응하는 판단을 통해 헌정 질서가 살아 있음을 보여야 한다. 내란 혐의는 타협의 대상도, 정치적 절충의 영역도 아니다.

순자는 ‘정의가 서지 않으면 국가는 설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본과 원칙, 상식의 집행이다. 누가, 언제, 어디까지 헌법을 위반했는지를 끝까지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일만이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길이다. 회피와 침묵, 부인은 권리가 아니다. 헌법 앞에서, 그리고 국민 앞에서 그 원칙은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사진아주경제 DB
[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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