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책임은 선택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의 기본 원칙

쿠팡 창업자이자 모회사 쿠팡Inc 이사회 의장인 김범석 의장이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했다. 김 의장은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에서 자신을 “전 세계 170여 개 국가에서 영업하는 글로벌 기업의 CEO”로 규정하며, “공식 비즈니스 일정으로 인해 청문회 출석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박대준·강한승 전 대표 등 핵심 경영진 역시 사임, 해외 체류, 인지 부족 등을 이유로 줄줄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청문회의 취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기본 원칙 앞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쿠팡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플랫폼 기업 중 하나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실질적 지배자가 ‘글로벌 CEO’라는 이유로 국회의 요구를 비켜간다면 이는 책임의 문제 이전에 상식의 문제다.

· ‘글로벌 CEO’라는 말은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

김 의장은 해외 거주와 글로벌 경영을 불출석의 핵심 사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책임을 더 무겁게 만드는 설명이다. 김 의장은 쿠팡Inc의 최대 주주이자 실질적 지배자다. ‘월급 사장’이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상대로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 이번 청문회의 본래 취지다. 이 지점에서 출석 거부는 단순한 일정 문제가 아니라 책임 인식의 문제로 바뀐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의 기준은 더 엄격해진다. 애플, 메타, 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개인정보 보호, 시장지배력, 플랫폼 책임 문제로 각국 의회에 직접 출석해 질문을 받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경영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라, 책임의 범위를 넓히는 조건이다.

· 책임은 법 이전의 문제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김 의장의 출석이 법적으로 강제되는지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태도다. 국회 청문회는 사법 절차가 아니라 공적 설명의 장이다. 기업이 사회적 영향력을 키울수록 설명 책임은 비용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특히 플랫폼 기업처럼 국민의 일상과 데이터,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업일수록 그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몽테스키외는 권한이 행사되는 곳에는 반드시 설명과 견제가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 원칙은 국가 권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시장과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플랫폼 기업의 권한은 법률 조문보다 현실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설명 책임 역시 회피할 수 없다.

· 쿠팡의 선택은 기업가정신과도 거리가 멀다

기업가정신은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이지만, 책임을 피하는 기술은 아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나서서 설명하고 질문을 감당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이다. 글로벌 기업을 만든 창업자라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이번 불출석 결정은 ‘법적으로 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을 선택했느냐’의 문제다. 국회와 사회의 질문 앞에서 뒤로 물러선 선택은 혁신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글로벌 경영을 이유로 국내 책임을 비켜가는 태도는 단기적으로는 부담을 덜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업 신뢰를 갉아먹는다.

· 시장은 기억하고, 책임은 누적된다

플랫폼 기업의 신뢰는 가격이나 속도가 아니라 태도에서 쌓인다. 위기 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시간이 지나도 기록으로 남는다. 시장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책임의 누적을 더 정확히 기억한다. 한 번 훼손된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더 큰 비용이 든다.

쿠팡은 이미 한국 사회의 핵심 인프라가 됐다. 그 위상에 걸맞은 책임의 언어와 태도를 선택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을 자처한다면, 글로벌 기준의 책임부터 보여야 한다.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사안은 특정 기업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업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커졌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 앞에서 “글로벌 CEO라서 참석할 수 없다”는 답은 기본에도, 원칙에도,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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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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