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몰린 석유화학·철강업 대출 잔액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이 본격화한 지난 1년간 대출 수요가 급증하며 은행권의 잠재적 리스크가 점차 커진 모습이다. 내년부터는 채권단 지원이 본격화해 제조업 부실이 은행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주경제신문이 9일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은행권 10곳(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부산·경남·전북·광주·제주)이 보유한 석유화학·철강 분야 대출 잔액은 총 20조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권은 모두 석유화학과 철강업 대출을 동시에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그중 신한은행(4조1930억원)은 전체 석유화학 대출 잔액의 33%가량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또 철강업은 하나은행이 1조6805억원으로 10대 시중은행 중 최대였다.
이러한 석유화학·철강 분야 대출 잔액은 업황이 악화한 지난 1년간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말 11조7434억원이던 석유화학 대출 잔액은 올해 9월 말 12조8845억원으로 9.7%, 철강은 7조7103억원에서 8조268억원으로 4.1% 늘었다. 이는 전체 기업대출이 단 2.3% 증가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다른 제조업 대비 석유화학, 철강 기업의 자금 조달이 더 많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업황 회복은커녕 오히려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LG화학은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기존 ‘Baa1’에서 ‘Baa2’로 신용등급을 한 단계 하향 조정당했다. 시장 내 수익성 하락 전망을 반영한 결과다. 철강 역시 미국의 관세 50% 부과, 중국발 공급 과잉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리며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이 큰 상태다.
더 우려되는 점은 내년부터 은행들이 석유화학·철강 기업에 대해 자금 조달을 더 늘려야 한다는 데 있다. 정부가 석유화학 구조재편과 철강 고도화를 명목으로 각 기업 채권단의 금융 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은행은 채무 상환을 압박하는 게 일반적인데, 정부 정책에 오히려 자금 지원을 더 늘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화학, 철강업 부실이 은행권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신규 자금 지원 등으로 기업이 구조조정이나 고도화에 성공하면 은행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반대로 실패하면 더 많은 금액을 부실채권으로 떠안게 된다.
이미 석유화학 구조재편 첫 사례로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이 자구안을 냈고, 채권단은 금융지원 규모, 방식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추후 다른 석유화학, 철강 기업도 채권단 역할이 강화될 예정인데, 그럴수록 은행의 금융 지원은 물론 건전성 압박은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날 산업통상부도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어 수입 규제, 비관세 장벽 등 통상현안을 점검한 뒤 구조재편 과정에서 기업 부담을 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기업의 부실이 은행 부실로 이전될 수 있다"며 "이미 빚이 많은데 만기 연장이나 금리 인하 등을 무조건 해준다면 바람직하지 못하고, 기업이 먼저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확실히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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