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욱 감독은 “AI가 시각효과(VFX)나 디지털 색보정(DI)처럼 하나의 툴로 쓰인다면 좋겠지만 그 이상을 넘어 제 직업뿐만 아니라 영상 문화, 미학 자체를 바꾸는 단계까지 가게 된다면 적응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배우 이병헌도 “배우들도 AI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다. 이제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오징어 게임’ 때 제 얼굴을 딴 AI 영상이 돌아다니는 걸 봤는데 ‘이거 언제 찍었지?’ 싶을 만큼 정교했다”며 “감독이 시나리오를 AI에게 맡기고 음악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시대다. 편리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있다. 법적 장치와 제도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AI를 도입한 제작진들은 기술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영화 ‘중간계’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은 “AI는 산업이 자연스럽게 재편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효율적 기술”이라며 “인력을 대체하기보다 제작 환경의 구조를 바꾸고 더 다양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간계’의 AI 연출을 맡은 권한슬 감독은 “AI로 영상을 만든다고 싸구려 기술이 아니다”며 “전문성과 장인정신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기존 CG를 대체하는 개념이 아니라 제작 기간과 공정을 줄여주는 기술적 진전”이라며 “효율적인 제작 방식으로 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할리우드에서 제기되는 ‘AI의 무단 학습’ 논란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보였다. 권 감독은 “사람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없으면 그림을 못 그리듯, AI가 학습을 통해 표현을 만드는 건 인간의 창작 과정과 비슷하다”며 “단순 복제라기보다 학습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AI 영화 산업은 빠르게 진화 중이다. 지난해 공개된 ‘나야, 문희’는 배우 나문희의 디지털 IP(지식재산권)를 활용한 첫 AI 영화로, 배우와 AI 협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제작사 엠씨에이엔터테인먼트 측은 “딥페이크와 불법 영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지금 합법적인 AI 제작 구조가 오히려 권리를 보호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도입을 막을 수는 없지만 창작자 권리 보호와 산업 표준 확립이 병행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기술의 발전과 예술의 가치가 충돌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영화계의 과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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