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의 완화적 재정·통화정책 기대감에 엔화 가치가 8개월 만에 달러당 152엔 선으로 급락했다. 엔저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에도 약세 압력이 더해질 전망이다.
9일 도쿄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8일 오후 3시 50분 기준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2.3엔을 기록했다. 전 거래일 종가보다 1.16% 상승한 수치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2엔까지 떨어진 것은 지난 2월 중순 이후 약 8개월 만이다. 특히 유로화 대비로는 1999년 유로화 도입 이후 최저 수준이다.
최근 엔화 약세는 차기 일본 총리로 유력한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의 완화적 경제정책 기대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4일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됐으며, 이달 중순 열릴 의회 투표를 거쳐 일본 첫 여성 총리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다카이치는 통화정책에서 금융완화를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해 선거에서도 “지금 금리를 올리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며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기조를 비판한 바 있다. 이번 당선 이후 BOJ가 이달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면서 엔화 매도세가 한층 강화됐다.
문제는 원화가 최근 엔화와 높은 동조화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관세 협상 불확실성이 외환시장 불안을 키우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00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엔저 압력이 더해질 경우 원화 약세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달 23일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BOJ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일본에서 조달된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됐다가 환차손 우려로 빠져나가며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 한국 역시 외국인 자금 이탈 압력이 커지고 원화 변동성이 확대될 공산이 크다.
미즈호은행의 나카지마 마사유키 시니어 외환전략가는 “엔 매도가 추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엔화는 유로 대비 180엔을 향해 하락할 수 있고, 다른 아시아 통화 대비로도 약세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일본의 초저금리 여건이 지속되는 한, 글로벌 투자심리 변화에 따라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재개와 청산이 반복되며 시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며 “관련 지표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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