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준 논설주간]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은 언제 어디에서 이뤄질까. 현재까지는 오는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1박 2일간 경주에서 열리는 APEC을 계기로 이·시(李·習)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 시진핑 주석이 경주 APEC에 참석할 것이라는 중국 측의 공식발표는 없다. 그러나 지난 19일 시진핑과 전화 통화를 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다음 달 한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때 사이드 라인에서 만날 것(to meet Chinese leader Xi Jinping next month on the sidelines of the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Summit in South Korea)”이라고 썼다. 미국 대통령이 확인해 준 만큼 적어도 시진핑이 APEC에 참가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사이드 라인’이란 예를 들어 야구경기장에서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경기장이 아닌 바깥쪽에서 내리는 경우 여기를 사이드 라인이라고 한다. 따라서 트럼프와 시진핑은 APEC의 정규 행사가 아닌 비정규 미팅 기회를 만들어 만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한국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이는 중국 측에서 발표할 내용”이라고 조건을 붙였다. 조 장관의 설명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은 경주 APEC 참석을 계기로 서울도 방문할 것이며 한·중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 일행이 머무를 곳이 신라호텔이 될 것이며 이와 관련해 호텔 측이 해당 기간의 결혼식 예약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시진핑이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 다섯 번째 방문이 된다. 첫 한국 방문은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시 당서기이던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진핑은 당시 KOTRA 초청으로 방한해 푸저우시 투자설명회를 개최했다. 저장(浙江)성 당서기이던 2005년 7월에는 기업인 투자유치단 150여 명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삼성, LG, SK, 효성 공장 등을 둘러봤다. 국가부주석이던 2009년 12월 14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 4개국 순방 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만났고 경상북도를 방문해 한국 자동차부품 산업 경쟁력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주석에 오른 1년 뒤인 2014년 7월 3~4일에는 서울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뒤 서울대에서 “중국은 평화를 애호한다”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시 주석은 중국공산당 내에서 ‘지한파(知韓派)’로도 분류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시 주석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원래 중국 영토였다”고 했다든가, 당내에서 “한국전쟁은 정의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 널리 알려져 있다. 개혁·개방 시대에 연안 개방 지역의 지방 당서기, 성장(省長) 시절부터 한국 경제를 공부했고, 부주석 시절에도 한국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던 시진핑 주석이 이번에 서울에 와서 반중(反中) 시위대와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신화통신이 이 대통령 말에 앞서 길게 인용한 시진핑 주석의 말은 이런 내용이었다.
“이 대통령의 당선을 다시 축하한다(시진핑 주석은 이 대통령의 당선 확정 직후 축전을 보내 당선을 축하한다는 뜻을 전했다). 중국과 한국은 서로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이다. 두 나라는 의식형태와 사회제도의 차이를 넘어 각 영역에서 교류와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공동 발전을 성취해야 한다. (중략) 중국과 한국은 (1992년) 수교 당시의 초심을 견지하고, 이웃 간 우호를 견실하게 하며, 서로 간에 윈윈하는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양국 인민들의 복지를 증진하고, 변란(變亂)으로 얽힌 지역과 국제형세에 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중략) 국제적 다자(多者)주의와 자유무역을 공동으로 지켜내며, 글로벌 산업공급망을 확보하자.” 시 주석이 이 대통령에게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을 강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이 보여주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만들어내는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성향을 비난한 것이었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Global Times)는 시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축하 전화를 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연설을 통해 국익을 중시하는 실용외교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를 설명하면서 “이 대통령의 외교정책과 대북 정책이 (전임 윤석열 정권과 다른) 조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환구시보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윤 전 대통령 당시 수교 이후 가장 낮은 골짜기(低谷)를 거쳤으며, 특히 윤 전 대통령은 대만 문제에 대해 잘못된(錯誤) 언행(2023년 11월 1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 “대만해협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을 해서 한·중 관계에 손해를 입혔다고 평가했다.
주목할 것은 중국 최대의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의 AI 답변 시스템에 ‘안미경중(安美經中)’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입력하자 다음과 같은 답변이 나왔다는 점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은 한국이 장기적으로 봉행해 온 외교 책략으로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노선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평형을 추구한다는 책략이다. 그러나 이재명 한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안미경중 노선은 이미 지속할 수 없게 된 노선’이라고 명확히 했다. 이는 한국 외교정책에 중대한 전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표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안미경중 정책을 버린다면 어떤 정책을 선택하게 될까. 중국은 한국 정부가 ‘안중경중(安中經中·안보도 경제도 중국에 의존)’ 정책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10월 말 서울에서건 경주에서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을 한다면 시 주석은 한국이 안미경중에서 탈피해서 안중경중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표현하게 될까. 시진핑이 만약 “한국이 제3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외교노선을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안중경중과 같은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조선시대 명·청(明淸)과의 관계사에 제3국(미국)이 없는 한반도와 대륙의 관계는 유사시 한반도가 대륙 왕조의 강요를 거부할 수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은 박스] 시진핑은 2032년 80세까지 최고 권좌(權座)에?
시진핑(習近平·72)은 중화인민공화국(PRC·People’s Republic of China)의 당·정·군(黨政軍) 최고위직 세 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있다. 국가주석(President), 중국공산당 중앙 총서기(General Secretary), 중앙군사원회 주석(Chairman) 등 세 최고권좌에 시진핑 한 사람이 앉아 있다. 국가주석은 2013년부터 12년째, 당총서기와 군사위 주석에는 각각 2012년부터 13년째 권좌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미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가 발행하는 온라인 계간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China Leadership Monitror) 2025년 가을호는 CIA와 NSC에서 중국 분석관을 지낸 조너선 친(Czin)의 기고문을 통해 시진핑이 2027년 가을에 열릴 제22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계속 집권할 가능성에 대해 진단했다. 친은 시진핑이 제22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에서 4연임에 성공하면 80세가 되는 2032년 가을 제23차 전당대회 때까지 집권하게 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조건이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우선 시진핑 자신은 예외로 만들어 3연임에 성공했지만 아직도 당과 정부의 첫 번째 인사원칙으로 살아 있는 ‘7상8하(67세까지는 새로운 직위에 임명될 수 있지만 68세 이후에는 인사 임명 대상에서 제외)’에 따라 2027년 가을에는 함께 일해온 정치국 상무위원 대부분과 많은 정치국원들이 퇴임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7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딩쉐샹(丁薛祥·63·국무원 부총리)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6명 모두 퇴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시진핑 자신의 3연임 기간에 시행했던 정책들의 계속성 유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정위원 24명으로 구성돼 있는 정치국에서도 중국 외교의 중추 왕이(王毅·72)를 비롯해 미국과의 관세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던 허리펑(何立峰·70) 등 10명에 가까운 국원들이 연령 문제로 퇴임해야 한다. 과연 75세인 시진핑이 측근들이 대부분 퇴임하는 가운데 임기 종료 때 80세가 될 4연임을 강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진핑 본인도, 중국공산당도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 언급이 없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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