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금융투자 업계에서 '순혈주의' 전통을 유지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직과 스카우트가 다반사인 게 여의도 증권가다. 요즘 뜨고 있는 ETF(상장지수펀드) 분야에선 이런 추세가 더 심하다. 가히 '용병의 전성시대'다. '잘나가는' ETF 전문가는 서로 모셔가기 바쁘다. 뛰어난 용병을 영입해 단숨에 업계 순위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톡톡히 보는 자산운용사들이 적지 않다.
'ETF 용병' 영입으로 재미를 본 대표적인 곳이 신한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이다. 두 회사는 ETF 시장에서 'SOL'과 'PLUS'로 각각 5위와 6위에 올라있다. 대형 자산운용사 출신 핵심 인재를 영입해 최근 ETF 시장에서 빠른 성장을 일궈냈다는 게 두 회사의 공통점이다.
신한자산운용은 ETF 후발주자다. 2014년에야 첫 ETF 상품을 내놨다. 출시가 늦은 만큼 브랜드 파워, 시장 지배력도 약했다. 그랬던 신한자산운용의 ETF 사업이 날개를 편 것은 2021년부터다. 신한자산운용은 'ETF 사관학교'인 삼성자산운용 출신 김정현 ETF전략본부 총괄본부장을 영입해 ETF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2004년 푸르덴셜증권 PB로 입사해 2008년 11월부터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팀 팀장으로 12년 넘게 몸 담은 ETF 전문가다.
김 본부장은 이직 이후 신한자산운용의 ETF 사업 틀을 확 바꿨다. 먼저 브랜드명을 'SMART'에서 'SOL'로 바꿨다. 전담조직도 신설했다. 이전까지 퀀트운용팀에서 ETF도 함께 운용했으나, 2021년 3월 조직개편을 통해 전담조직인 'ETF운용센터'를 신설했다. 구성원도 모두 외부에서 찾았다. 홍진우 ETF전략실장, 박수민 ETF상품전략팀 이사, 천기훈 ETF컨설팅팀장 등 핵심 인력이 합류했다. 상품 수도 같은 기간 5개에서 65개로 확대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 본부장 영입 이후 4년간 신한자산운용의 ETF 순자산총액은(AUM)은 16배 이상 늘어났다. 2021년 5621억원 규모였던 ETF 순자산총액은 지난 20일 기준 9조227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지난 2023년과 2024년엔 순자산총액 기준 각각 261%, 104.7%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자산운용업계에서 전례 없는 초고속 성장을 달성했다.
이전까지 한화자산운용은 ETF 사업을 김성훈 전 한화자산운용 ETF사업본부장, 최영진 ETF마케팅본부장(ETF사업본부장 겸임) 등 '순혈' 출신들에 맡겼다. 금 본부장 영입 이후 한화자산운용의 ETF 사업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직 직후 금 본부장은 기존 ETF 브랜드 'ARIRANG'을 'PLUS'로 전면 교체하는 리브랜드를 추진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PLUS ETF 전체 운용규모는 지난해 초 2조7676억원에서 지난 20일 기준 6조3707억원으로 급증했다.
한화자산운용 내부에선 금 본부장 영입 이후 운용과 컨설팅 두 측면에서 전문성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과거 기관 투자자 중심이었던 전략에서 벗어나, 개인 투자자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을 선도적으로 출시했다"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통해 리테일 시장 공략을 주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정현 신한자산운용 본부장은 '조선TOP3플러스', '소부장 시리즈', '월배당 시리즈' 등 테마형 상품으로 흥행을 주도했다. 대표 상품인 'SOL 조선TOP3플러스'는 연초 이후 90.07%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20일 기준 순자산 1조3732억원으로, 초대형 국내 주식형 ETF다. 국내 주식형 ETF 중 순자산총액이 1조원을 넘는 건 국내 주식형 ETF 385개 중 15개 뿐이다.
'월배당'이라는 키워드를 처음 제시한 것도 김정현 본부장이다. 2022년 6월 국내 최초로 월 분배금을 지급하는 'SOL 미국S&P500'을 시작으로 미국 배당성장주에 대한 젊은 개인투자자들의 수요에 맞춰 'SOL 미국배당다우존스'를 추가로 상장해 월배당이라는 새로운 투자 트렌드를 형성했다.
한화자산운용 금정섭 본부장은 한화·방산·고배당 등 차별화된 상품을 내놨다. 고배당과 방산 등 기존 섹터를 선제적으로 시장에 알려 핵심 테마로 발전시켰다. 대표 상품인 'PLUS 고배당주'와 'PLUS K방산'의 순자산총액은 각각 1조원(20일 기준 PLUS 고배당주 1조5183억원, PLUS K방산 1조1712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중위권 운용업계에선 흔치 않은 성과다.
한화자산운용 관계자는 "기존에 있던 상품이었으나, 투자자 친화적 마케팅 효과와 지정학 리스크를 통한 수익률 급등이 자금을 몰리게 한 것 같다"며 "금 본부장의 영입은 ETF 마케팅 및 상품 강화의 핵심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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