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휴전 합의를 피하면서, 앞으로 전쟁을 이어가며 점령지를 넓히는 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와 CNN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전면적인 평화협상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속하기 위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약 3시간 회담을 가졌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에는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부터 휴전 없이 곧바로 평화협상에 들어가는 방안을 요구해왔다. 현재 러시아는 여름철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면서 일부 전선에서 전과를 올리고 있어, 휴전 없이 협상이 시작되면 전투를 이어가면서도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CNN은 러시아가 끝을 예측할 수 없는 장기 협상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협상이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전쟁을 지속하며 실질적 이익을 확보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당초 예고했던 ‘즉각 휴전 요구’ 대신 ‘평화협정 직행’을 언급하며 방침을 변경했다. 이로 인해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지속한 채 협상 조건을 유리하게 조정할 기회를 갖게 되었고,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반대에도 전선을 유지할 명분을 얻게 됐다.
특히 평화협상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의제인 영토 문제에서도 러시아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유럽 지도자들에게 푸틴 대통령이 아직 점령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약 3분의 1을 넘겨받겠다는 요구를 전달했다고 CNN은 전했다.
돈바스는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을 포함하며, 현재 러시아는 전체 면적의 88%인 4만6570㎢를 장악한 상태다. 남은 6600㎢는 우크라이나가 통제 중이지만, 러시아군이 최근 이 지역에 공세를 집중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그 대가로 헤르손과 자포리자 등 아직 러시아 장악률이 낮은 지역의 전선을 동결하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이런 합의가 향후 러시아의 추가 공격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함께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영토의 양보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고 거듭 밝힌 바 있으며, 특히 도네츠크 지역은 러시아의 진격을 저지하는 전략적 방어선으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드러난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의도는 단순한 전쟁 종식이 아니라, 소련 붕괴 이후 약화된 러시아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데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회담 직후에도 전쟁 종식보다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상황'에 초점을 맞췄다”며 “러시아의 '잃어버린 영광'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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