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게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고 있으나,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양국 간 경제·정치·군사적 유대 탓에 설득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 관계는 구(舊)소련 시절인 냉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소련은 중국과 갈등이 심화하자 인도와 급속히 가까워졌으며, 중국·파키스탄 등과 마찰을 빚는 인도를 외교적으로 지원했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지원하고 인도의 핵실험 이후 각종 제재를 가하면서 인도-러시아 간 유대는 더욱 강화됐다.
당시 소련은 국제 시세보다 10~20% 저렴한 원유를 인도에 공급하고, 군수·비군수 물자 구입을 위한 대출도 제공했다. 싱크탱크 인도전략연구소(ORF)의 하르시 판트 소장은 “인도 국민은 역사적인 이유로 러시아를 여전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본다”며 “반면 미국에 대해선 항상 파키스탄 편에 가까웠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ORF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원유 수출 중 3분의 1 이상이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값싼 원유로 국내 휘발유 가격을 낮추고, 정제 제품을 해외에 팔아 높은 마진을 거뒀다.
최근 인도 정유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일부 줄였지만, 전문가들은 가격 경쟁력과 예산 영향 등을 고려할 때 단기간 내 수입을 끊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도 대중(對中) 의존 심화를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인도와의 경제·외교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양국 교역 규모는 690억달러(약 96조원)로 급증했다.
군사 분야 역시 인도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인도군의 무기 자산 절반 이상이 러시아·소련제이며, 러시아는 기술이전과 현지 생산 지원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도는 지난달 러시아에서 건조한 신형 스텔스 호위함을 취역했고, 러시아 기술 지원으로 자국에서 2척을 추가 건조 중이다. 2018년에는 미국의 제재 경고에도 최신형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도입했다.
애슐리 텔리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안보전문가는 “인도가 러시아산 장비를 대체할 수 있더라도 실제 완전히 교체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무기 의존도를 공개 비판한 뒤, 인도산 대미 수출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관세율은 기존 25%에서 50%로 뛰었다. 인도 외무부는 이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고 반발하며 “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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